항목 ID | GC00100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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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盆唐區板橋洞地域-誌-史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
판교동은 연안이씨 연성군 이곤이 사패지로 하사받아 후손들이 정착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곤은 1506년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문의정국공신이 되면서 통정대부에 올라 첨지중추부사, 예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가문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집 뒤편에 있는 500여년 된 느티나무를 선조들이 심어서 가꾼 것이라고 하니 마을의 연원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예로부터 이 지역은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이기 때문에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시되었다. 뿐만 아니라 서울 근교의 농업단지로서의 역할도 매우 컸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쌀은 품질이 우수하여 인기가 많았으며, 참외와 호박, 오이 등의 야채와 화훼 생산도 유명한 곳이었다.
과거 일제강점기의 교통수단은 거의 우마차였고 버스는 하루에 한 두 차례가 고작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서울까지 가는 교통로였으나 아침에 우마차에 야채를 싣고 서울로 떠나면 밤중이 되어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일제 때 이곳은 면장, 지서장, 교장 등의 주요직책만 일본 사람이 맡았을 뿐 다른 일본인들의 출입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용학씨는 학교에 있을 때 해방을 맞았는데, 일본인들이 전혀 위축되지 않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인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마을 뒤편으로 연안이씨 묘역이 약 10여만평 펼쳐져 있는데, 묘역 이외에는 6.25 때 거의 다 불타버려 중요한 유적은 별로 남지 않았다. 모두 불타버리고 겨우 종손의 집과 연성군의 사당이 남았을 뿐이다.
판교마을은 개발 예정인 판교신도시의 중심 부분에 해당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중심부에 연안이씨의 묘역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종친회쪽에서는 최소한도로 묘를 이장하고 나머지는 분당 수내동의 중앙공원의 선례가 있는 것처럼 공원화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 종친회에서는 이 묘역의 학술적인 검토를 모두 마치고 당국에 갖은 탄원서를 올린 바 있다. 그러나 아직 개발당국으로부터 적극적인 의사표명을 받지 못한 상태이고, 종친회도 보상비 수령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