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1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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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盆唐區雲中洞地域-誌-衣生活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
이 지역의 의생활은 인접 지역의 경우와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대개 경기도의 일반적인 경우와 같이 여름에는 남자들의 경우, 바지저고리와 고의적삼, 홑조끼 등을 입었는데, 등걸잠뱅이, 고의적삼 등은 빨래를 위해 여러 벌을 해서 입었다. 그리고 여자들은 치마저고리에 속곳 고쟁이 등을 입었다고 한다.
다만 친정과는 달리 운중동으로 시집을 오니 어른들의 저고리에 단추가 위에만 하나가 달려 있어서 남들 앞에 그냥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친청에서 입던 것처럼 바늘로 단추를 달아서 입게 하였다.
예전에는 모든 옷을 주부가 만들어서 가족들에게 입혔다. 그래서 바느질 재주가 없으면 핀잔을 듣는 경우가 많았다. 열 댓살만 해도 자기 저고리를 만들어 있거나 버선을 기워 신을 정도는 되었다. 겨울에 어른들이 입는 솜바지 저고리를 예로 들면, 광목으로 풀을 하고 난 뒤에 양잿물을 넣고 삶은 다음, 물에다 안 담그고 볕에다 널면 하얗게 표백이 되었다. 그것을 풀을 해서 다리미질을 하루종일 하고 마지막으로 바느질을 하는 것이다.
옷감이나 옷의 염색은 주로 물감을 사다가 집에서 하였다. 옷에 따라 까맣게 또는 분홍색으로 물을 들였다.
주부들은 빨래를 하느라고 겨울이라도 한가한 때가 없었다. 빨래는 집 앞의 뜰에 있는 우물을 이용하였는데, 물이 줄거나 늘지 않고 항상 그대로였으며, 수온이 따뜻한 것이 특징이었다. 빨래는 주로 양잿물을 이용했는데, 양잿물은 쌀겨를 잿물에 끓이고 체로 쳐서 반죽을 한 후 쓰기 좋게 주먹만 하게 만들어 빨래터에 두고 썼다. 양잿물은 너무 독해서 손가락의 피부가 상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옷을 깨끗하게 하려고 양잿물을 즐겨 쓸 수밖에 없었다.
빨래 후에는 대개 밤시간에 숯불다리미를 이용하여 옷을 갈무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명절 때라 하더라도 아주 잘 사는 사람들은 새옷도 해 입혔지만, 대개는 평소의 바지저고리와 조끼 등을 깨끗하게 빨아서 입었다. 요즘에는 한복에도 조바위 같은 것을 즐겨 쓰지만, 예전에는 댕기 이외에는 별도로 머리에 쓰는 것이 없었다.
윤달에는 집집마다 노인들의 수의를 해 놓는 경우가 많았다. 윤달이 든 해에는 동네마다 베장수들도 돌아다녔다. 수의는 일상 옷보다 훨씬 길게 만들어 발끝까지도 덮이도록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