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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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政治人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만순 |
[정의]
경기도 성남시에서 정치 활동을 하는 사람.
[개설]
정치인 선정은 공정성과 역사적 기록이라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바르고 공평해야 한다. 여기서는 성남 지역의 거시적인 정치 역사를 기반으로 정치인을 살펴보았으며, 지역에서 열성적으로 활약하며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 지역 정치와 지역 운동의 위상을 높인 정치인을 꼽았다.
‘성남의 정치인’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일정한 법적인 요건을 갖추고 성남 지역의 정치 조직을 기반으로 정치 활동을 펼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남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는 점은 부수적인 요건으로 고려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성남 지역을 무대로 활동한 정치인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 지방자치의원이나 자치단체장도 정치인이며, 직선 정치인뿐만 아니라 간선 정치인도 포함하고자 한다. 보통 정치인 하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먼저 떠올리고, 지방자치의원이나 단체장들은 정치인의 범위에서 제외되는 경향이 있다. 중앙과 지방을 구분하여 중앙은 정치이고, 지방은 행정이라는 식의 이분법은 중앙 정치가 정치를 독점하고, 지방은 중앙의 통제를 받는 하부 구조라는 낡은 관습적 사고에서 비롯된다. 정치는 중앙의 독점물이 아니며, 중앙도 정치요, 지방도 정치이다. 정치의 의미를 살펴보면, ‘정치’는 ‘자치(自治, self-government)’ 개념과 밀접하다. 국가는 가장 포괄적인 정치 의사 결정 단위로서 국가를 대외적으로 대표하며, 주권을 보유한다는 점에서 중앙 정치의 독자성이 있다. 하지만 국가 중심의 ‘중앙 정치’의 주권 범위 안에서 ‘지방 정치’도 명백하게 중요한 정치 활동을 수행한다.
성남의 정치인은 이런 맥락에서 ‘성남 지역의 지방 정치인’을 뜻한다. 그러나 반드시 민선된 자만이 정치인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특정 정당 조직 안에서 정당 정치에 공헌하는 사람을 정치인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판단을 위해서는 정당의 실상에 대한 정보와 경험을 필요로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조사 대상에서 정당 정치인은 성남의 정치인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성남 지역의 국회의원]
성남이 국회의원 선거 지역구 공식 명칭으로 사용된 것은 제10대 국회의원 선거[1978. 12. 12.]부터이다. 성남은 광주, 이천, 여주와 함께 경기 제4선거구를 이루었다. 성남시가 경기도로부터 독립한 시기가 1973년 7월 1일이고, 제9대 국회의원 선거가 1973년 2월 27일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성남시의 독립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독립 이전 제5대 선거까지 성남은 광주군 선거구에, 제6, 7, 8대 선거 때에는 광주, 이천 선거구에, 제9대 선거 때에는 광주, 이천, 광주 선거구에 속했다. 제10대 들어 광주, 이천, 여주, 성남 선거구로 명칭이 변경되어 성남이 최초로 국회의원 선거 지역구 명칭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 이전까지 성남은 광주와 하나였기에 광주의 희비는 곧 성남인들의 희비였다고 할 수 있다.
성남시가 광주군으로부터 분리되어 완전히 독립 선거구를 이루게 된 것은 제13대 국회의원 선거[1985. 12. 12.] 때부터이다. 이때 성남은 갑[수정], 을[중원, 분당]의 두 선거구를 갖고 각 1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제15대부터는 분당이 독립하여 수정, 중원, 분당의 3개 선거구에서 각 1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게 되었으며, 제16대부터는 분당 선거구가 다시 갑, 을로 나뉘어 총 4개 지역구를 갖게 되었다.
제1대 국회의원 선거는 제헌의회를 구성한 직후 1948년 5월 10일에 치러진다. 신탁 통치와 토지 분배 등 제반 문제를 둘러싼 좌우 대립으로 남북 합작 정부의 수립이 어려워지자 이승만의 정읍 발언 이후 남한만의 단독 선거로 이루어진다. 제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임기 2년의 제헌 의원 200명이 선출된다. 광주군에서는 신익희(申翼熙)가 선출되었다. 광주가 낳은 우파 정치인인 신익희는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며 독립 운동에 투신한 독립운동가로 삼일운동을 이끌어내고 임시정부 헌법을 기초했다. 귀국 후에는 미군정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의장에 오르고, 대한독립촉성국민회를 조직하여 부회장을 지냈으며, 제헌 의회에서는 광주에서 당선되어 제헌의회 부의장으로 활동했다. 초대 제헌 국회의장 이승만의 뒤를 이어 국회의장도 역임했다. 이승만 정권에 민심이 등을 돌리자 1956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는데, 유세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하지만 185만 표의 추모 표가 몰린 일화로 유명하다.
제8대까지 국회의원 선거 광주 지역 당선자를 살펴보면, 신익희[민주당 초대, 2, 3대], 최인규(崔仁圭)[자유당 4대], 신하균(申河均)[무소속 5대 민의원, 민정당 6대], 차지철(車智澈)[민주공화당 7, 8대]이 당선되었다. 이 가운데 신하균은 신익희 선생의 아들이며, 차지철은 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으로 재직하면서 10·26사태 당시 저격당해 사망한 정치인이다. 이후 제9대부터 제13대까지는 중선거구제로 바뀌어 한 선거구에서 두 명씩 당선되었는데, 제12대 국회의원 선거[1985. 12. 12.]까지 유지되었고, 제13대[1988. 4. 26.]부터는 다시 소선거구제로 되돌아가 오늘에 이르게 된다. 제9~12대까지 국회의원을 살펴보면, 제9대[1973. 2. 27.]에는 차지철[민주공화당], 오세응(吳世應)[신민당]이 당선되었고, 제10대[1978. 12. 12.]에는 정동성(鄭東星)[민주공화당]과 오세응[무소속]이 당선되었다. ‘성남’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선거구에 등재된 제11대[성남-광주 선거구, 1981. 3. 25.]에는 오세응[민주정의당], 이대엽(李大燁)[신정당]이 당선되었고, 제12대[1985. 12. 12.]에는 이대엽[국민당], 오세응[민정당]이 각각 1, 2위로 당선되었다. 이후 처음으로 성남의 독립 선거구가 등장하고 소선거구제로 전환한 제13대부터 제16대까지는, 제13대[1988. 4. 26.]에는 성남 갑[수정구]에서 이대엽[신민주공화당]이, 성남 을[중원, 분당]에서 이찬구(李讚九)[평민당]가, 제14대[1992. 3. 24.]에는 성남 갑에서 이윤수(李允洙)[민주당]가, 성남 을에서 오세응[민자당]이, 제15대[1996. 4. 11.]에는 수정에서 이윤수[국민회의], 중원에서 조성준(趙誠俊)[국민회의], 분당에서 오세응[신한국당]이, 제16대[2000. 4. 13.]에는 수정에서 이윤수[민주당], 중원에서 조성준[민주당]이, 분당 갑에서 고흥길(高興吉)[한나라당]이, 분당 을에서 임태희(任太熙)[한나라당]가 각각 당선되었다. 제17대(2004. 4. 15.)에는 수정에서 김태년[열린우리당], 중원에서 이상락[열린우리당], 분당 갑에서 고흥길[한나라당], 분당 을에서 임태희[한나라당]가 각각 당선되었다. 하지만 이상락이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이 무효되어 보궐선거를 치른 결과 신상진[한나라당]이 당선되었다. 제18대[2008. 4. 9.]에는 수정에서 신영수[한나라당], 중원에서 신상진[한나라당], 분당 갑에서 고흥길[한나라당], 분당 을에서 임태희[한나라당]가 각각 당선되었다.
제19대 국회의원 선거[2012. 4. 11.]에서는 수정구에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중원구에서 김미희 통합진보당 후보와 신상진 새누리당 후보가, 분당구 갑에서는 이종훈 새누리당 후보가, 분당구 을에서는 전하진 새누리당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20대 국회의원 선거[2016. 4. 13.]에서는 수정구에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중원구에서 신상진 새누리당 후보가, 분당구 갑에서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분당구 을에서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21대 국회의원 선거[2020. 4. 15.]에서는 수정구에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중원구에서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분당구 갑에서 김은혜 국민의당 후보가, 분당구 을에서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분당 갑 김은혜 의원이 경기도지사 출마로 의원직을 사퇴하자 안철수 후보가 2022년 6월 1일 보궐선거로 당선되었다.
[5·16 군사쿠데타 이전의 지방자치제와 지역 정치인]
지방자치제가 처음 시행된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3개월 후 법률 제8호 「지방행정에 관한 임시 조치법」[1948년 11월 17일]이 제정되면서부터다. 이는 유효 기간 6개월의 시한 법이었다. 그 후 1949년 7월 4일 법률 제32호 「지방자치법」이 공포되고, 그 제도적 정비도 계속 이루어졌다.
이후 법이 한 차례 개정되었으며,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 한국 선거 사상 최초의 지방 의회 의원 선거[1952. 4. 25.]가 전국에서 실시되었다. 성남 지역의 돌마, 낙생, 대왕 등 3개 면에서도 각각 10명의 면 의원이 선출되었고, 중부면 성남 출장소 관내는 산성 동부의 중부면과 합하여 의원 11명이 선출되었다. 이때는 면 의회 의원이 단체장을 선출하는 간접선거였다.
이후 두 차례의 개정을 거쳐 기초자치단체의 장과 지방의회의원 선거[1958. 8. 8.]가 일제히 실시되었다. 성남 지역에서는 면 의회 의원을 선출하고, 8월 10일에서 12월 말일까지 면장을 면민들이 직접 뽑았다. 그러나 그해 12월 24일 또 한 차례의 「지방자치단체 법 개정 법률안」을 통과시키게 되는데[2·4파동], 시-읍-면-동-이장을 모두 임명제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때 개정된 임명제에 따라 성남 지역에서도 각 면의 면장이 임명되었다. 이 법안은 후에 3·15 부정 선거로 악용되어 4.19혁명으로 이어졌고, 자유당 정권은 무너졌다.
이후 제2공화국에서는 새로운 지방자치법[법률 제563호]이 1960년 11월 1일 공포되었다. 이에 따라 1960년 12월 19일 또 한 번의 시·면 의회 의원 선거가 동시에 실시되었다. 면장 선거는 12월 26일 실시되었는데, 성남 지역에서도 12월 19일 면마다 면 의회 의원 선거가 실시되어 각 10명의 의원이 선출되었다. 12월 26일에는 정부 수립 후 최초의 직선제 선거인 면민에 의한 면장 직접 선거가 시행되었다. 그러나 정착되어 가는가 싶던 지방자치제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군사혁명위원회 포고령 제4호가 공포되며 폐지된다. 9월 1일 법률 제707호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 조치법」에 의해 지방자치단체장도 다시 임명제로 바뀌게 되고, 읍이나 면 대신에 군이 기초자치단체가 되었다. 이 체제는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할 때까지 지속되어 현재 3회의 지방자치 선거를 치렀다. 1961년 5·16 전의 지방자치 선거는 『성남시사』 등의 책자에 기록이 전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52년 선거에서 돌마면의 이용규(李容圭)가 의회 간선 면장으로 선출되어 이전의 임명 면장인 이갑규(李甲圭)의 직을 이었고, 중부면에서는 박천복(朴天福)[1901~1989]이 당선되었다. 박천복은 첫 지방자치 선거에서 선출된 간선 면장으로서 사재를 털어 지역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성남의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무학이었지만 성남의 육영 사업 발전에 공을 들였는데, 1948년 수진리 간이학교가 성남국민학교로 승격되었을 때 개인 소유의 땅을 기부하여 새 학교를 지었다. 1946년 성남출장소가 문을 열 때에도 땅을 기부했다. 주민들은 성남초등학교 교정에 그의 공덕비를 세웠다. 한편 1958년 선거에서는 돌마면에서 이호규(李鎬珪)가 임명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1960년 제2공화국에서 시행된 선거에서는 정부 수립 후 최초의 직선제로 돌마 면장 선거를 치러 홍순석(洪淳錫)과 김문배(金文培) 후보가 입후보하여 홍순석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후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1961년 최진붕(崔鎭鵬), 1966년 박명원(朴明原)을 끝으로 돌마출장소로 변경되었다.
[지방자치제의 부활과 성남의 정치인]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후 5번의 동시 선거가 치러졌다.[제1회 1995. 6. 27, 제2회 1998. 6. 4, 제3회 2002. 6. 13, 제4회 2006. 5. 31, 제5회 2010. 6. 2] 경기도 광역자치단체장으로는 성남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인물들로 이인제(李仁濟)[안양, 민자당], 임창렬(林昌烈)[수원 팔달, 국민회의], 손학규(孫鶴圭)[광명], 김문수(金文洙)[부천]가 당선되었다. 성남시장 기초자치단체장은, 제1회 민선 성남시장에 오성수(吳誠洙)[무소속], 제2회 민선 성남시장에 김병량(金炳亮)[국민회의], 제3회에 이어 제4회는 민선 성남시장에 이대엽(李大燁)[한나라당]이 재선되었으며, 제5회 민선 성남시장에는 이재명[민주당], 제6회 민선 시장에는 은수미[더불어민주당], 제7회 민선시장에는 신상진[국민의당]이 당선되었다.
지방자치 의원은 제1회 광역 의원 선거의 경우, (가) 수정구 제1, 2, 3선거구는 민주당에서 각각 김종식, 손정문, 허재안이, (나) 중원구 제4, 5, 6선거구는 민주당에서 각각 이일남, 이상락, 정형만이, (다) 분당구 제7, 8선거구는 각각 강대기[민자당], 정소앙[민주당]이 당선되었다.
제2회 광역 의원 선거의 경우, (가) 수정구 제1, 2선거구는 국민회의는 각각 손정문, 허재안이, (나) 중원구 제3, 4선거구는 국민회의에서 각각 이영성, 이상락이, (다) 분당구 제5, 6선거구는 한나라당에서 각각 강대기, 정원섭이 당선되었다.
제3회 광역 의원 선거의 경우, (가) 수정구 제1, 2선거구는 한나라당에서 각각 강선장, 임정복이, (나) 중원구 제3, 4선거구는 각각 임봉규[한나라], 이상락[민주]이, (다) 분당구 제5, 6, 7, 8선거구는 한나라당에서 각각 강희철, 이태순, 김현욱, 정재영이 당선되었다.
제4회 광역 의원 선거에서는 모든 선거구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었는데 (가) 수정구 제1, 2선거구는 각각 이병열, 장윤영이, (나) 중원구 제3, 4선거구는 각각 방영기, 박문수, 다) 분당구 제5, 6, 7, 8선거구는 각각 장정은, 이태순, 김현욱, 정재영이 당선되었다.
제5회 광역 의원 선거의 경우, (가) 수정구 제1, 2 선거구는 민주당의 허재안이, (나) 중원구 제3, 4선거구는 민주당의 조광주와 윤은숙이, (다) 분당구 제5, 6, 7, 8선거구는 모두 한나라당에서 장정은, 이태순, 안계일, 정재영이 당선되었다.
제6회 광역 의원 선거의 경우, (가) 수정구 제1, 2선거구는 모두 민주당의 이효경, 박창순이, (나) 중원구 제3, 4선거구는 민주당의 조광주, 윤은숙이, 분당구 제5, 6,7 선거구는 새누리당의 방정환, 이영희, 이태호, 분당구 제8 선거구는 민주당 김지환이 당선되었다.,
제7회 광역 의원 선거의 경우, (가) 수정구 제1, 2선거구는 모두 민주당의 최만식, 박창순이, (나) 중원구 제3, 4선거구는 각각 민주당의 조광주, 국종범이, 분당구 제5, 6, 7, 8 선거구는 민주당의 임재철, 권락용, 이나영, 최세명이 당선되었다.
제8회 광역 의원 선거의 경우, (가) 수정구 제1, 2선거구는 민주당의 문승호, 최만식이, (나) 중원구 제3, 4선거구는 민주당의 전석훈, 국종범이, 분당구 제5, 6, 7, 8선거구는 국민의당 방성환, 이기인, 안계일, 이제영이 당선되었다.
제1회 기초의원 선거 성남시 수정구의 당선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가) 신흥동에서는 신흥1동 박용두(樸鎔斗), 신흥2동 최명근(崔明根), 나운채(羅雲埰), 신흥3동 박찬범(朴贊範), (나) 태평동에서는 태평1동 정수웅(鄭秀雄), 태평2동 김삼근(金三根), 태평3동 김미희(金薇希), 태평4동 박용승(朴用承), (다) 수진동에서는 수진1동 손영태(孫永泰), 수진2동 권태흥(權泰興), (라) 단대동에서는 전준민(田埈珉), (마) 산성동에서는 정재의(鄭在義), (바) 양지동에서는 김종윤(金鍾允), (사) 복정동에서는 강규식(姜圭植), (아) 신촌동에서는 이인순(梨仁淳), (자) 시흥동에서는 이수영(李洙永), (차) 고등동에서는 남장우(南長佑)가 당선되었다.
제1회 기초의원 선거 성남시 중원구의 당선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가) 성남동에서는 윤기중(尹基重), 김종수(金宗洙), (나) 중동에서는 장명섭(張暝燮), 권찬오(權鑽五), (다) 금광동에서는 금광1동 홍순두(洪淳斗), 염동준(廉東俊), 금광2동 최병원(崔丙元), (라) 은행동에서는 은행1동 김상현(金常顯), 은행2동 강부원(姜富遠), 김원희(金元熙), (마) 상대원동에서는 상대원1동 최연옥(崔蓮玉), 김세환(金世煥), 상대원2동 김영봉(金永奉), 상대원3동 김지숙(金芝淑), (바) 여수동에서는 안종대(安種大)가 당선되었다.
제1회 기초의원 선거 성남시 분당구의 당선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가) 분당동에서는 오인석(吳仁錫), (나) 서현동에서는 김숙배(金淑培), 장영춘(張泳椿), (다) 내정동에서는 이태순(李泰淳), (라) 정자동에서는 최오규(崔午均), 김동환(金東煥), (마) 초림동에서는 홍양일(洪良一), (바) 서당동에서는 안정연(安正演), (사) 수내동에서는 김용준(金容駿), (아) 이매동에서는 강주동(姜周東), (자) 야탑동에서는 유인갑(柳寅甲), (차) 중탑동에서는 임봉규(林鳳奎), (카) 하탑동에서는 석규섭(石圭燮), (타) 매송동에서는 김철홍(金哲洪), (파) 판교동에서는 정재의(鄭在儀), (하) 금곡동에서는 김준식(金俊植), (가)-1. 운중동에서는 김두일(金斗鎰)이 당선되었다.
제2회 기초의원 선거 성남시 수정구의 당선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가) 신흥동에서는 신흥1동 박용두(朴鎔斗), 신흥2동 나운채(羅雲埰), 신흥3동 우종수(禹鍾秀), (나) 태평동에서는 태평1동 최유석(崔裕碩), 태평2동 표진형(表振馨), 태평3동 김미희(金薇希), 태평4동 박용승(朴用承), (다) 수진동에서는 수진1동 홍경표(洪慶杓), 수진2동 이근연(李根淵), (라) 단대동에서는 전준민(田埈珉), (마) 산성-복정동에서는 강용득(姜龍得), (바) 양지동에서는 김종윤(金鍾允), (사) 신촌동-고등동-시흥동에서는 이수영(李洙永)이 당선되었다.
제2회 기초의원 선거 성남시 중원구의 당선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가) 성남동에서는 김종수(金宗洙), (나) 중동에서는 권찬오(權鑽五), (다) 금광동에서는 금광1동 염동준(廉東俊), 금광2동 신현갑(申鉉甲), (라) 은행동에서는 은행1동 김상현(金常顯), 은행2동 강부원(姜富遠), (마) 상대원동에서는 상대원1동 방익환(方益煥), 상대원2동 이계남(李季南), 상대원3동 김두일(金斗鎰), (바) 여수동에서는 김민자(金敏子)가 당선되었다.
제2회 기초의원 선거 성남시 분당구의 당선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가) 분당동에서는 오인석(吳仁錫), (나) 서현동에서는 장영춘(張泳椿), (다) 내정동에서는 이태순(李泰淳), (라) 정자동에서는 최병성(崔秉成), (마) 초림동에서는 홍양일(洪良一), (바) 서당동에서는 윤광열(尹光烈), (사) 수내동에서는 박권종(朴權鍾), (아) 이매동에서는 방영기(方榮基), (자) 야탑동에서는 박희동(朴喜東), (차) 중탑동에서는 박문석(朴文石), (카) 하탑동에서는 석규섭(石圭燮), (타) 매송동에서는 김철홍(金哲洪), (파) 판교-운중동에서는 김대진(金大振), (하) 금곡동에서는 이호섭(李虎燮), (가)-1. 구미동에서는 전이만(全二萬)이 당선되었다.
제3회 기초의원 선거 성남시 수정구의 당선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가) 신흥동에서는 신흥1동 문길만(文吉滿), 신흥2동 홍준기(洪駿基), 신흥3동 유철식(柳哲植), (나) 태평동에서는 태평1동 이상호(李相晧), 태평2동 표진형(表振馨), 태평3동 김완창(金完昌), 태평4동 한선상(韓善相), (다) 수진동에서는 수진1동 홍경표(洪慶杓), 수진2동 정응섭(鄭應燮), (라) 단대동에서는 윤춘모(尹春模), (마) 산성동에서는 장윤영(張允榮), (바) 양지동에서는 박광봉(朴光鳳), (사) 복정동에서는 홍용기(洪容基), (아) 신촌동-고등동-시흥동에서는 이수영(李洙永)이 당선되었다.
제3회 기초의원 선거 성남시 중원구 당선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가) 성남동에서는 강태식(姜泰植), (나) 중동에서는 김유석(金裕錫), (다) 금광동에서는 금광1동 염동준(廉東俊), 금광2동 신현갑(申鉉甲), (라) 은행동에서는 은행1동 김상현(金常顯), 은행2동 최화영(崔和永), (마) 상대원동에서는 상대원1동 방익환(方益煥), 상대원2동 지관근(池管根), 상대원3동 김기명(金基明), (바) 하대원동에서는 김민자(金敏子)가 당선되었다.
제3회 기초의원 선거 성남시 분당구의 당선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가) 분당동에서는 오인석(吳仁錫), (나) 수내동에서는 수내1동 홍양일(洪良一), 수내2동 최윤길(崔允吉), 수내3동 박권종(朴權鍾), (다) 정자동에서는 정자1동 최진섭(崔鎭燮), 정자2동 김미라(金美羅), 정자3동 이형만(李炯滿), (라) 서현동에서는 서현1동 김숙배(金淑培), 서현2동 윤광열(尹光烈), (마) 이매동에서는 이매1동 이영희(李永熙), 이매2동 김철홍(金哲洪), (바) 야탑동에서는 야탑1동 민동익(閔東益), 야탑2동 장대훈(張大勳), 야탑3동 지수식(池洙植), (사) 판교-운중동에서는 김대진(金大振), (아) 금곡동에서는 이호섭(李虎燮), (자) 구미동에서는 전이만(全二萬)이 당선되었다.
제4회 기초의원 선거는 소선거구제에서 중선거구제로 바뀌어 실시되었다. 수정구 당선자는 (가 선거구) 문길만, 남용삼, (나 선거구) 윤창근, 정용한, (다 선거구) 최만식, 이상호, 이수영, (라 선거구) 이재호, 정종삼, 최성은이 당선되었다. 중원구 당선자는 (마 선거구) 지관근, 유근주, (바 선거구) 고희영, 한성심, (사 선거구) 김유석, 김재노, (아 선거구) 김시중, 황영승이다. 분당구 당선자는 (자 선거구) 박영애, 이영희, (차 선거구) 박문석, 장대훈, (카 선거구) 윤광열, 남상욱, (타 선거구) 김대진, 최윤길, (파 선거구) 정기영, 안계일, 홍석환, (하 선거구) 김해숙, 박권종, 이형만이다. 선거 비례 대표로는 한나라당 이순복, 강한구, 민주당 정채진, 민주노동당 김현경이 각각 당선되었다.
제5회 기초의원 선거 수정구 당선자는 (가 선거구) 이덕수, 강상태, (나 선거구) 윤창근, 정용한, (다 선거구) 최만식, 정훈, (라 선거구) 이재호, 정종삼이다. 중원구 당선자는 (마 선거구) 지관근, 유근주, (바 선거구) 조정환, 한성심, (사 선거구) 김유석, 김재노, (아 선거구) 마선식, 황영승이다. 분당구 당선자는 (자 선거구) 김용, 이영희, (차 선거구) 박문석, 장대훈, (카 선거구) 박영일, 박종철, (타 선거구) 이숙정, 최윤길, (파 선거구) 정기영, 박완정, 이윤우, (하 선거구) 김해숙, 박권종, 강한구이다. 비례 대표로는 한나라당 김순례, 지수식, 민주당 김선임, 박창순이 각각 당선되었다.
제6회 기초의원 선거 수정구 당선자는 (가 선거구) 이덕수, 강상태, (나 선거구) 윤창근, 안광환, (다 선거구) 최만식, 이상호, (라 선거구) 이재호, 정종삼이다. 중원구 당선자는 (마 선거구) 지관근, 홍현임 (바 선거구) 박도진, 박호근, (사 선거구) 안극수, 마선식이다. 분당구 당선자는 (아 선거구) 박영애, 김용, (자 선거구) 박광순, 박문석, (차 선거구) 이기인, 박종철, (카 선거구) 노환인, 권락용, (타 선거구) 김윤정, 어지영, (파 선거구) 김영발, 조정식, (하 선거구) 김해숙, 이제영, 강한구이다. 비례 대표로는 한나라당 김순례, 지수식, 민주당 김선임, 박창순이 각각 당선되었다.
제7회 기초의원 선거 수정구 당선자는 (가 선거구) 남용삼, 강상태, (나 선거구) 윤창근, 안광환, (다 선거구) 김선임, 이상호, (라 선거구) 신한호, 유중진, 강신철이다. 중원구 당선자는 (마 선거구) 고병용, 선창선, (바 선거구) 박호근, 안광림, (사 선거구) 임정미, 마선식, 안극수이다. 분당구 당선자는 (아 선거구) 이준배, 박영애, (자 선거구) 박문석, 박광순, (차 선거구) 박경희, 이기인, (카 선거구) 정윤, 최현백, (타 선거구) 김명수, 정봉규, (파 선거구) 조정식, 김영발, (하 선거구) 유재호, 최종성, 박은미이다. 비례 대표로는 국민의힘 김정희, 바른미래당 한선미, 더불어민주당 서은경, 최미경이 각각 당선되었다.
제8회 기초의원 선거 수정구 당선자는 (가 선거구) 이덕수, 강상태, (나 선거구) 이군수, 박주윤, (다 선거구) 김선임, 박명순, (라 선거구) 박기범, 구재평이다. 중원구 당선자는 (마 선거구) 고병용, 황금성, (바 선거구) 윤혜선, 안광림, (사 선거구) 조우현, 안극수, 추선미이다. 분당구 당선자는 (아 선거구) 박종각, 이준배, (자 선거구) 정연화, 김보석, (차 선거구) 박경희, 이연경, (카 선거구) 최현백, 김종환, (타 선거구) 최종성, 박은미, 서희경, (파 선거구) 서은경, 김장권, (하 선거구) 조정식, 정용환이다. 비례 대표로는 국민의 힘 김보미, 박광순, 더불어민주당 성혜련, 김윤환이 각각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