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0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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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墳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집필자 | 김주홍 |
[정의]
시신이나 유골을 땅에 묻은 곳. 즉 무덤을 말한다.
[개관]
분묘는 성남지역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다. 왜냐하면 이 지역이 조선시대에 수도 한양에 인접한 기전지역(畿甸地域)으로서 산세가 수려하고 길지가 많아 이 지역으로 이사하여 살아온 명문사대부들의 양택(陽宅:주택) 및 음택(陰宅:무덤)이 많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궁내동, 금토동, 고등동, 판교동, 수내동, 율동 지역 등을 중심으로 다수 분포하고 있는 사대부 및 서민들의 묘역은 단순히 묘역 자체뿐만 아니라 여기에 부속된 신도비(神道碑), 묘갈(墓碣), 묘표(墓表) 등의 각종 비, 그리고 장명등, 문인석, 망주석 등의 석물양식 등도 같이 살펴봄으로써 이 지역의 문화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를 통해 과거 이 지역의 대표적인 문중(門中)과 묘주(墓主)의 신분, 묘향(墓向), 합장(合葬), 그리고 각종 비의 건립시기, 양식, 비향(碑向), 비면(碑面), 찬자(撰者), 서자(書者), 전자(篆者)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내용]
이들 분묘유적들은 대부분 각 문중의 관리하에 보존이 잘되고 있는데, 이를 조선시대에 종2품 이상의 관직과 품계를 갖추어야 건립할 수 있었던 신도비가 있는 묘역 외에, 묘갈과 묘표가 건립되어 있는 묘역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참고로 묘향과 각종 비의 비향은 해당 유적의 후면에서 관측한 방위이다.
(1) 신도비 건립묘역
〈표1〉신도비 건립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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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비 건립묘역
현재 성남지역에 잔존하고 있는 신도비 건립묘역은 모두 12기이다(표 1 참조). 문중별로는 청주한씨 3기, 전주이씨 3기, 한산이씨 2기 외에 덕수이씨, 순흥안씨, 광주이씨, 창녕조씨 등의 문중에서 각각 1기씩 모두 7개 문중의 묘역에 1~3기씩의 신도비가 건립되어 있으며, 묘주의 신분은 모두 문신이다. 묘향은 동남향 3기, 남향 3기, 서향 2기, 북동향 1기, 남서향 1기, 북향 1기, 동향 1기로서 대부분 동남향 혹은 남향이며, 북향은 극히 꺼리나 예외적으로 한효순 묘의 경우 북향하고 있다. 합장 여부는 단독장 2기, 부인과의 쌍분 4기를 제외하면 나머지 5기의 묘역이 합장묘이나 중원구 하대원동 소재 이상안 묘역의 경우 의관장(衣冠葬)이다. 대부분 부인이 부좌(祔左) 혹은 부(祔)하여 통상적인 장례의 예를 하고 있다.
신도비의 최초 건립시기는 15세기대에 청주한씨 문중에서 1기, 16세기대에 덕수이씨, 순흥안씨, 청주한씨 문중에서 각 1기, 17세기대에 전주이씨, 한산이씨, 창녕조씨, 광주이씨 문중에서 각 1기, 18세기대에 한산이씨 문중에서 1기, 19세기대에 전주이씨 문중에서 1기가 건립되었으며, 한효순 신도비는 입석연도가 1924년으로서 가장 늦다. 이를 통해 조선 전시기에 걸쳐 성남지역의 7개 주요 문중에 의해 소량씩이나마 비의 건립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양식면에서는 비좌와·팔작지붕옥개석형 5기, 비좌와 이수형 2기, 비좌와 일월문관석형 1기, 비좌와 화관석형 2기, 비좌와 평옥개석형 1기, 비좌와 비신월두형 1기로서 성남지역에는 모두 6가지 형태의 신도비 양식이 현존하고 있다. 이 중 비좌와 관석(冠石) 앞뒷면에 태양을 상징하는 일문(日文)과 달을 상징하는 월문(月文)이 조각된 신도비는 고등동 덕수이씨 선영의 이함[1470~1534] 신도비가 유일하다. 또한 비좌와 화관석형은 청주한씨 문중만의 독특한 양식으로서 채용되어 입석(立石)시 세워진 듯하다.
비향(碑向)은 남서향 4기, 동향 3기, 동남향 2기, 북향 2기, 서향 1기로서 대부분 남서향이나 예외적으로 북향이 2기 있다. 비면(碑面)은 앞뒤 2면 8기, 앞면 2기, 4면 1기로서 대부분 앞뒤 2면에 비문을 새기고 있다.
끝으로 비문의 찬자(撰者)는 박세당, 오억령, 이경석, 이의현, 이병관, 이재, 이행, 서거정, 신용개, 장유, 정두경, 조인규 등 12인에 의해 주로 비문이 찬하여졌다. 서자(書者)는 확인이 곤란한 2기를 제외하고 김로, 김의신, 김현성, 김진향, 남공제, 이진휴, 이식, 안침, 이기렴, 이승휘, 이광사, 박기양 등 12인에 의해 주로 비문이 서하여졌다. 전자(篆者)는 마모 혹은 기록하지 않아 확인이 곤란한 5기를 제외하고 김상용, 김광현, 남공제, 윤덕준, 홍현보, 윤조영, 이태현, 이광사, 이상중 등 9인이 주로 전액하였다.
(2) 묘갈 건립묘역
〈표2〉묘갈 건립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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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갈 건립묘역
묘갈은 조선시대와 같은 신분제사회에서 신도비를 건립할 수 있는 관직과 품계가 안 되어 대신 세워졌던 비이다. 묘갈 건립묘역을 문중별로 살펴보면 1기를 건립한 문중은 광주이씨, 해평윤씨, 덕수이씨, 삭녕최씨, 순천김씨, 완산이씨, 순흥안씨, 연안이씨, 나주정씨 등이며, 2기를 건립한 문중은 안동권씨, 의령남씨, 청주한씨, 한산이씨 등이며, 전주이씨 문중은 3기를 건립하여 모두 14개 문중에서 1~3기씩의 묘갈을 건립하였다(표 2 참조).
묘주의 신분은 중원구 여수동 소재의 이청신 묘 1기를 제외하고 모두 문신이다. 묘향(墓向)은 동남향이 5기로 가장 많으며, 동향, 남향, 서향이 각 3기이고, 이례적으로 최옹, 남유용 등 2기의 묘갈은 북향하고 있다. 합장은 단독장이 4기, 부인과의 쌍분이 3기로서 이외 합장분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분당구 율동 한명욱 묘역의 경우 전부인(前夫人)은 쌍분을 조성하여 합장하고, 쌍분의 중간 뒤로 또 하나의 봉분을 만들어 후부인(後夫人)을 부장하여 전체적으로 세 개의 봉분을 品자형으로 조성하였다.
다음 묘갈의 건립시기는 확인이 곤란한 1기를 제외하고 16세기대가 삭녕최씨, 광주이씨, 연안이씨, 청주한씨 문중에서 각 1기, 17세기대가 순천김씨, 광주이씨, 한산이씨 문중에서 각 1기, 안동권씨, 전주이씨 문중에서 각 2기, 18세기대가 덕수이씨, 해평윤씨, 한산이씨, 청주한씨, 전주이씨 문중에서 각 1기, 19세기대가 의령남씨 문중에서 2기 등이며, 백현동 정윤희 묘갈의 경우 1942년으로서 건립연대가 가장 늦다. 이를 통해 15세기대를 제외하고 조선 전시기에 걸쳐 성남지역에 소량이나마 유력 가문을 중심으로 묘갈이 1~2기씩 건립되어졌음을 알 수 있다.
양식면에서는 총 20기의 묘갈 중 비좌와 일월문옥개석형 1기, 비좌와 팔작지붕옥개석형 6기, 비좌와 비신월두형 13기로서 성남지역에는 모두 3가지 형태의 묘갈 양식이 건립되었다. 이 중 가장 많은 양식은 비좌와 비신 상부가 반월처럼 둥근 월두형으로 묘갈 건립시에 가장 선호되어졌던 양식이다.
비향(碑向)은 동남향과 남향이 각 4기, 동향이 3기로서 이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남서향, 북향이 각 2기, 북동향이 1기씩으로 소수이다. 비면(碑面)은 총 20기의 묘갈 중 앞뒤 2면 7기, 4면 9기로서 대부분이며, 이외에 앞면 2기, 전,후,좌 3면 2기로서 묘갈의 비문은 앞뒤 2면과 4면에 주로 새겼음을 알 수 있다.
찬자(撰者)는 확인이 곤란한 5기를 제외하고 이민구, 송시열, 정태제, 정두경, 남공철 등 16인에 의해 주로 비문이 찬하여졌다. 이 중 남공철과 한명욱 묘갈은 본인이 생전에 자찬(自撰)한 경우로서 극히 예외적인데, 특히 남공철 묘갈의 비문은 중국 당나라 명필 안진경(顔眞卿)[709~785]의 글씨를 집자하여 새겼다. 서자(書者)는 확인이 곤란한 6기를 제외하고 윤문거, 송준길, 윤용구, 이재 등 14인에 의해 비문이 찬하여졌다. 전자(篆者)는 윤안인, 김진상, 남주헌 등 3인이 확인되어 찬자와 서자는 비문에 뚜렷이 명기하는 데 비해 전자는 명기하지 않은 경우가 많음을 확인할 수 있다.
(3) 묘표 건립묘역
〈표3〉묘표 건립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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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표 건립묘역
묘표 건립묘역으로서 옛 묘표가 세워져 있는 묘역은 성남지역내에서 약 70여기 가량이다(표 3 참조). 이 묘표 중에는 신도비나 묘갈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규모가 크고 형태가 다양하며 조각양식이 우수한 경우도 있다. 또한 사송동 원경하묘역과 원의손묘역 묘표의 경우는 중국 당나라의 명필이었던 안진경(顔眞卿), 소식(蘇軾), 저수량(褚遂良)의 글자를 집자하여 비문에 새기기도 하였다. 묘향(墓向)은 대부분 분묘의 묘향과 일치하나 남명우, 이의번, 한전 묘 등 3기는 이와 다른 경우로서 극히 예외적이다.
묘표의 건립시기는 건립연도가 뚜렷한 33기 중 15세기대가 2기, 16세기대가 4기, 17세기대가 12기, 18세기대가 9기, 19세기대가 3기, 20세기대가 1기 가량이다.
양식면에서는 비좌와 비신월두형 38기, 비좌와 팔작지붕옥개석형 13기, 비좌와 일월문관석형 5기, 비좌와 화관석형 6기, 비좌와 이수형 2기, 비좌와 조문(鳥文) 관석형 1기, 비좌와 평옥개석형(平屋蓋石形) 1기, 귀부와 일월문 관석형 1기로서 성남지역에는 모두 8가지 형태의 다양한 묘표 양식이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중 가장 많은 건립양식은 묘갈과 마찬가지로 비좌와 비신월두형이 가장 많은 수로서 선호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판교동 이곤[1462~1524] 묘표 관석의 조문(鳥紋), 고등동 이경민 묘표의 귀부 비좌, 율동 한숙 묘표의 평옥개석형은 성남지역에서 각각 유일한 예로서 주목된다.
비향(碑向)은 동남향 18기, 남서향 12기로 가장 많으며, 서향 10기, 남향 10기, 동향 7기, 북동향 6기로서 북향은 극히 꺼렸음을 알 수 있다. 비면(碑面)은 앞면 20기, 전,후 2면 35기, 전,후,좌 3면 3기, 4면 9기로서 묘표의 비문은 앞면과 전,후2면에 주로 새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 비문의 찬자(撰者)는 남언성, 심추, 이민효, 이진향, 이석, 이헌진, 윤행임, 송시열 등 18인이 확인되며, 한효순 묘표는 자술(自述)하여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다. 서자(書者)는 남성임, 이광사, 이유, 신효중, 조상우, 황운조 등 15인에 의해 비문이 서하여졌다. 한편 묘갈의 형태를 하고 있는 고등동 이혜[1635~1715] 묘표의 비문은 앞면 큰 글자는한호(韓濩)[1543~1605]의 글씨를, 뒷면 작은 글자는 금토동 남공철 묘갈과 마찬가지로 중국 당의 명필 안진경의 글씨를 집자하였다. 또한, 사송동 원경하[1698~1761] 묘표의 경우는 중국 당나라의 명필 저수량의 글씨를 집자하여 조성하여 금석학적으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