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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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道化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이경엽 |
출생 시기/일시 | 1913년 - 조도화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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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조도화 출생지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
성격 | 국악인 |
성별 | 여 |
본관 | 창녕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세습 무계 출신 국악인.
[개설]
본관은 창녕(昌寧), 본명은 조동운(曺東雲), 별명은 조박(曺博), 조두(曺頭)이다. 아버지는 조정남이고 어머니는 오자근이다. 능주 조씨가는 전라도의 대표적인 무계 집안으로 꼽힌다. 대대로 무업을 이어왔던 가계이며, 더불어 기악과 판소리, 줄타기 분야의 명인·명창들을 배출했던 집안이었다.
조도화의 외가 역시 예인 집안이었다. 어머니 오자근은 일제 강점기의 가야금 병창 명인인 오태석의 고모이다. 친가와 외가 모두 대대로 예인을 배출한 집안의 후예답게 그는 국악인의 삶을 살았다.
[활동 사항]
조도화(曺桃花)[1913~?]는 처음엔 집안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무업을 거부하고 신식학교 공부를 마치고 은행원이 되었다. 1년쯤 근무하다가 광양의 광산 금광의 서기로 자리를 옮겼다. 그후 조도화는 순천 기생 조합 권번의 서기가 되었다가 재주와 흥을 타고난 터이라 자연스럽게 북채를 잡게 되었고 조상들의 업을 대물림하게 된다. 조도화의 소리북 스승은 이한량과 김막동이었고 인간 문화재 김명환 명고가 한때 조도화 문하에서 북가락 가르침을 받은 바 있다.
조도화는 순천 권번에서 활동하다가 얼마 후 독자적인 공연 단체를 꾸며 국내뿐 아니라 만주, 일본 등 인근 국가를 다니며 순회 공연 활동을 하였다. 조도화가 일제 때부터 1950년대까지 창극 단체 등에서 함께 교류한 국악인은 이동백, 김채만, 송만갑, 김창룡, 정정렬, 유성준, 장판개, 장도순, 장한똑똑이, 정종근, 김정문, 정응민, 박동실, 조몽실, 박기채, 박지홍, 공창식, 공기남, 조동선, 임소향, 오태석, 한주환, 박록주, 임방울, 김여란, 박초월, 정광수, 박귀희, 김소희, 조소옥, 조난옥, 김춘앵, 김연수, 조명수 등이 있다.
그는 객지 생활을 마친 뒤로 줄곧 능주에서 살면서 굿음악 악사로 활동했다. 그가 더불어 활동한 이들은 능주 잠정리의 조계남·박정녀 부부, 능주 석고리의 조양금 무녀, 도암면 원천리의 임장업 무녀 등이다.
조도화의 활동은 여러 매체에 기록되어 있다. 「능주 씻김굿」[‘한국의 미’, KBS 제작, 1997]이란 다큐멘터리에 영상 기록이 남아 있고, 『화순의 무가 사설집-굿소리』[화순군]에 굿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