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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993
한자 梁進永
이칭/별칭 경원(景遠),만희재(晩羲齋),재원(梓園),학음(鶴陰)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안동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88년연표보기 - 양진영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59년 - 양진영 진사시 급제
몰년 시기/일시 1860년연표보기 - 양진영 사망
출생지 양진영 출생지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지도보기
묘소 양진영 묘소 - 화순군 청풍면 어촌리
성격 문인
성별
본관 제주(濟州)

[정의]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인.

[가계]

본관은 제주. 자는 경원(景遠), 호는 만희재(晩羲齋)·재원(梓園)·학음(鶴陰). 학포 양팽손(梁彭孫)의 후예이다. 아버지는 양윤주(梁潤周)이고 어머니는 진주 김씨 김시향(金時香)의 딸이다.

[활동 사항]

양진영(梁進永)[1788~1860]은 4세에 다른 사람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스스로 문자를 깨달았고, 6세에는 8괘(八卦)와 6갑(六甲)을 외웠으며, 9세에는 장자방(張子房)과 제갈량(諸葛亮)의 우열을 논하는 글을 지었다. 이후 문장이 일취월장하여 19세에는 화순의 감시(監試)에 응시하여 1등으로 합격하였고, 1839년(헌종 5)에 복시에 응시하여 또 1등으로 합격하였다. 1859년(철종 10)에 노인 우대의 법으로 진사가 되었다.

『주역(周易)』을 깊이 연구하여 「대연추책(大衍推策)」을 짓고 스스로 호를 만희재(晩羲齋)라 하였다. 1857년에는 고을 선비들과 함께 서울에 올라와 기묘 명현(己卯名賢)인 양팽손(梁彭孫)의 시호를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선비들과 향음 주례(鄕飮酒禮)를 많이 행하였으며 시작(詩作)에도 매우 뛰어났다. 「십삼경 의책(十三經擬策)」·「유서석산기(遊瑞石山記)」 등을 지었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만희집(晩羲集)』 11권 4책을 남겼는데, 종증손(從曾孫) 양재경(梁在慶)이 중심이 되어 1917년에 간행하였다.

[묘소]

묘는 화순군 청풍면 어촌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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