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9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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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相檜 |
이칭/별칭 | 무숙(茂叔),삼괴(三愧)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안동교 |
출생 시기/일시 | 1679년 - 이상회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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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33년 - 이상회 생원시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748년 - 이상회 사망 |
출생지 | 이상회 출생지 -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 |
거주|이주지 | 이상회 이주지 -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산간리 |
서재 | 이상회 서재 운수당(雲樹堂) -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산간리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전주(全州) |
[정의]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무숙(茂叔), 호는 삼괴(三愧). 양도공(襄度公) 이천우(李天祐)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충의위(忠義衛) 이제(李濟)이다.
[활동 사항]
이상회(李相檜)[1679~1748]는 어려서부터 자질이 아름다웠고 실덕(實德)을 근본으로 삼아 영화(榮華)를 추구하지 않았다. 성장하여 송시열(宋時烈)의 학통을 이은 손재(遜齋) 박광일(朴光一)의 문하에 출입하며 의리를 강론하였다.
1733년(영조 9)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다. 만년에 천태산(天台山) 아래 간리(澗里)에 운수당(雲樹堂)을 짓고 은거하면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이상회는 어질지 않으면 산에게 부끄럽고, 지혜롭지 않으면 물에게 부끄러우며, 어질지 않고 지혜롭지 않으면 하늘에 부끄럽다고 하면서 삼괴(三愧)를 호로 삼아 근실하게 공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