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8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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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玉壺里木川張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옥호리 호동 마을 |
집필자 | 최성은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옥호리에 있는 목천 장씨 집성촌.
[명칭 유래]
호동 마을은 지형이 병 모양처럼 생겼다 하여 이렇게 부른다.
[형성 및 변천]
장구소(張九素)[?~1675]를 입향조로 하여 이어오는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옥호리의 목천 장씨 집성촌이다. 1625년경 목천 장씨 장구소가 승주 쌍암에서 거주하다가 호동 마을로 입향하여 정착하였다.
장내권(張乃權)은 좌찬성에 증직된 충의공(忠毅公) 장윤(張潤)[1552~1593]의 8세손이며 장응규(張應奎)의 아들로 호는 농은(農隱)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8세 때 집안으로 양자를 가니 한쪽은 가난하고 한쪽은 부자이거늘 이에 부자를 사양하고, 가난한 곳으로 나아가서 양부모 섬기기를 낳아준 부모같이 하여 정성을 두 곳에 똑같이 하고 뜻과 몸을 겸하여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이질에 걸렸는데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토끼가 좋은 약이다’라고 말하거늘 마침 기르는 사람이 있어 토끼를 잡아 달여 드리니 병이 나았고, 또 황달에 걸렸는데 의원이 말하기를 꿩이 좋다고 하니 홀연히 솔개가 꿩을 잡아 뜰에 떨어 뜨여 달여 드려 병이 나았다. 현감과 암행어사가 함께 장려하여 쌀과 고기로써 어버이 봉양함을 도왔다. 학문에 전력하였고 아들과 조카들을 가르치며 배움에 때가 있음을 경계하였다. 1884년(고종 21)에 일이 조정에 알려져 동몽교관에 추증되었다.
장재권(張在權)은 장문철(張文喆)의 아들이고 호는 호암(壺巖)이다. 집안을 잘 다스려 화목하게 하였고 사람을 대할 때는 동정심을 갖고 대하였다. 1866년 가선대부가 되었다.
장직권(張直權)은 장문철의 아들로 호는 정헌(靜軒)이다. 타고난 성품이 부지런하고 검소하였으며 몸가짐과 행동을 삼가고 묵묵히 하였다. 1874년 가선대부가 되었다.
장종권(張宗權)은 장문철의 아들로 호는 무수옹(無愁翁)이다. 천성이 효성스럽고 우애하였으며 경서와 저술로 업을 삼았다. 1882년에 가선대부를 하였다.
[자연환경]
호동 마을은 동쪽으로는 큰산서골, 작은산서골, 서쪽으로는 원탑골, 동남쪽으로는 가장골, 비재, 북쪽으로는 꼬막산이 있다.
[현황]
2013년 현재 23가구 39명이 목천 장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1976년에 건립한 청파거사 목천 장옹 수경 공적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