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13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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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從 魚氏 |
영어공식명칭 | Hamjong Ye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조익현 |
입향 시기/일시 | 16세기 초 - 함종 어씨, 어숙훈 경상남도 거창 입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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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함종 - 평안남도 강서군 함종면 |
입향지 | 함종 어씨 입향지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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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함종 어씨 집성지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석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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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함종 어씨 집성지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동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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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세장지 | 어숙훈 묘소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 아주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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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시조 | 어화인 |
입향 시조 | 어숙훈 |
어화인을 시조로 하고 어숙훈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거창군의 세거 성씨.
함종 어씨는 조선 초기 식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고 집현전 직제학을 역임한 어변갑(魚變甲), ‘논풍수소(論風水疏)’로 세종을 감동시킨 어효첨(魚孝瞻), 좌의정을 역임한 어세겸(魚世謙), 이시애의 난을 평정해 적개공신이 된 어세공(魚世恭)을 배출한 명문가이다. 조선 중기 선비 화가 어몽룡(魚夢龍)은 5만 원권 뒷면의 「월매도(月梅圖)」를 그렸고, 경종의 비 선의 왕후(宣懿王后)는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어유구(魚有龜)의 딸이다. 25세 어재연(魚在淵) 장군은 1871년 신미양요에 순국했고, 28세 어윤중(魚允中)은 한말의 정치가로 유명하다.
함종 어씨는 고려 시대 어화인(魚化仁)이 1171년(명종 원년)에 남송(南宋)에서 강릉으로 귀화했으며, 후에 함종(咸從)으로 이거하며 함종이 본관이 되었다.
15세 어숙훈(魚叔勳)이 16세기 초 서울 백자동에서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 큰골로 입향하였다. 임진왜란을 만나 16세 어계침과 아들 어운기 부자가 상주로 피난을 와 정착하였고, 어계완(魚季琓)과 아들 어운한(魚雲翰)이 거창군 가조면 석강리에 정착하였다.
2000년 통계에 의하면 함종 어씨의 거창군 내 분포는 54가구에 134명으로 집계되었고, 대표적인 집성촌은 거창군 가조면 석강리와 가조면 동례리이다.
가조면 석강리에는 20세 어진룡(魚震龍)·진붕(震鵬)·진봉(震鳳) 3형제의 효성과 1728년 무신난에 창의한 충의(忠義)를 기려 세운 효의재(孝義齋), 23세 어석년(魚錫年)의 효행을 기려 세운 효자비, 독립 유공자 어명철의 유적비가 있다. 동례리에는 어진룡이 소요하던 온계정(溫溪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