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1315
한자 大峴里
영어공식명칭 Daehyeo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대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유하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대현리 개설
성격 법정리
가구수 83세대
인구[남/여] 165명[남자 81명, 여자 84명]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 속하는 행정구역

[개설]

대현리(大峴里)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의 9개 법정리 중 한 지역이다. 대현리에는 내외탐리, 대현리 등 2개의 행정리와 행정리 내외탐리에 속하는 내탐 마을[속칭 ‘탈양’이라고도 함], 외탐 마을[속칭 ‘바깥 탈양’, ‘새터’라고도 함], 행정리 대현리에 속하는 상대현 마을[속칭 ‘용다리걸’, ‘용교동’이라고도 함], 대현 마을[속칭 ‘중대현’, ‘중새터’이라고도 함], 하대현 마을[속칭 ‘굼터마’라고도 함] 등 5개 자연 마을이 있다.

[명칭 유래]

대현리 일대의 골짜기가 원래 험준한 큰 골짜기는 아니지만 외적의 침입을 막고자 하는 의미를 담아 ‘큰재’, ‘한재’라고 부른 것에서 발전하여 대현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삼가군의 신지면, 율원면이 거창군에 편입되면서 삼가군 신지면 대현리는 거창군 신원면 대현리가 되었다.

대현리는 조선 시대 임진왜란 당시 나주 임씨가 산청에서 피난 온 것에서 시작되었다. 소룡산에서 뻗은 산맥을 따라 상대현 마을, 대현 마을, 하대현 마을이 있는데 상대현 마을은 김해 김씨, 대현 마을은 울산 김씨, 하대현 마을은 남평 문씨가 옮겨 와서 마을을 이룬 것으로 전해진다. 내탐 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초계 정씨가 옮겨 왔고, 외탐 마을은 함양 박씨가 피난 와서 마을이 생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자연환경]

대현리는 남쪽에 소룡산[761m], 동쪽에 월여산[863m], 서쪽에 바랑산[797m]이 있어 산지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산간 분지 지형을 하고 있다. 와룡리에서부터 발원한 사천천대현리 남쪽에서 북쪽으로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다.

전형적인 산간 분지 지형으로 주변 지역보다 비교적 해발 고도가 높아서, 주변 지역보다 여름철 기온이 약 5℃ 이상 낮은 것이 특징이다.

[현황]

신원면 대현리의 인구는 2016년 4월 말 현재 83세대, 165명[남자 81명, 여자 84명]으로 신원면 전체 인구 1,616명의 약 10.2%에 해당한다. 대현리는 전형적인 산간 분지 지형으로 감자와 고랭지 채소 등을 많이 재배하고 있다.

한편, 신원면은 ‘거창 사건’[거창 양민 학살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거창 사건6·25 전쟁 중인 1951년 2월, 거창군 신원면 일원에서 국군이 빨치산 토벌 작전 수행 과정에서 719명의 양민을 학살한 사건이다. 1989년 제1회 합동 위령제 이후 매년 추모 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며, 최근 제65주기 거창 사건 희생자 합동 위령제와 추모식이 4월 9일 거창 사건 추모 공원에서 거행되었다. 2004년에 대현리 북쪽 지역에 사천천을 끼고 거창 사건 추모 공원이 건립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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