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양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1116
한자 熊陽倉
영어공식명칭 Ungyangchang Warehouse
이칭/별칭 신창(新倉)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시설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준공 시기/일시 1581년연표보기~1584년연표보기 - 웅양창 건립
최초 설립지 웅양창 -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지도보기
성격 창고

[정의]

조선 시대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노현리 일대에 설치되었던 창고.

[개설]

조선 시대 지방의 각 관아에는 관내에서 거두어들인 곡물을 출납하고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다. 지금의 거창군은 조선 시대 거창현(居昌縣)[거창부(居昌府)] 지역과 안음현(安陰縣)[안의현(安義縣)]·삼가현(三嘉縣) 일부 지역이 합쳐진 구역이다. 웅양창(熊陽倉)은 조선 시대 거창현 지역에 설치되었던 네 개 창고 중 하나로 신창(新倉)이라고도 한다.

[건립 경위]

거창 현감(居昌縣監) 양자징(梁子徵) 재임 중 건립되었다. 양자징은 1581년(선조 14) 거창 현감으로 부임하여 1584년(선조 17)까지 재임하였기 때문에 1581~1584년 사이 웅양창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변천]

웅양창신창이라고도 불렸다. 『여지도서(輿地圖書)』, 1832년경 간행 『경상도 읍지(慶尙道邑誌)』, 1895년 간행 『영남 읍지(嶺南邑誌)』의 ‘창고(倉庫)’ 조(條)에는 읍치 북쪽 30리에 위치한 창고를 ‘웅양창’이라 기재해 놓았다. 반면, 『대동지지(大東地志)』와 1899년 간행 『거창군 읍지(居昌郡邑誌)』, 『1872년 지방도』의 거창부 지도에는 같은 창고를 ‘신창’이라고 기재해 놓아, 웅양창신창이 동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웅양창의 위치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노현리가 조선 시대 동안 ‘신창리(新倉里)’로 불렸던 것으로 보아, 이 일대에 웅양창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웅양창은 19세기 말 기능을 상실하고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대동지지』에는 거창부의 네 개 창고가 모두 확인되나, 1895년 간행 『영남 읍지』에는 고제창(高梯倉)·가조창(加祚倉)이 사라지고, 사창(司倉)·웅양창 2개 창고만 기재되어 있다. 그리고 1899년 간행 『거창군 읍지』의 거창군 지도에는 웅양창[신창]이 있는 위치에 ‘신창 금무(新倉今無)[신창, 지금은 없다]’라고 기재되어 있어, 1895~1899년 사이 웅양창이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웅양창은 환곡(還穀) 업무도 담당하기도 했는데, 1789년(정조 13)에는 웅양창을 관리하는 색고(色庫)들이 환곡 문제로 이태국(李泰國)을 구타해 사망케 하는 사건이 조정에 보고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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