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1051
한자 永丁莊
영어공식명칭 Yeongjeongjang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채광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고려 후기 - 영정장 제정
변천 시기/일시 조선 초기 - 영정장 폐지
비정 지역 영정장 -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현 서쪽
성격 월경지(越境地)
관련 문헌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정의]

조선 초까지 합천에 존재했던 거창의 월경지.

[개설]

월경지(越境地)는 비입지(飛入地) 또는 비지(飛地)라고도 하였다. 『대동여지도』에 섬처럼 보이는 각 읍의 월경지는 소속 읍의 구역 안에 있거나 붙어 있지 않고, 중간에 끼여 있는 다른 읍의 영역을 넘어 따로 위치하였다. 그리하여 가까운 읍의 통치를 받지 않고 멀리 떨어진 소속 읍의 지배를 받았다.

[형성 및 변천]

940년(태조 23)을 전후하여 9주 5소경을 중심으로 한 신라의 군현 체제를 전면 개편하게 되었다. 이러한 군현 편성은 성종 조를 거쳐 1018년(현종 9)에 개편되었고 이로써 고려 지방 제도의 기초가 확립되었다. 즉, 전국에 3경(京)·8목(牧)·4도호부(都護府)를 설치하고 그 밑에는 주(州)·군(郡)·현(縣)·진(鎭)을 영(領)·속(屬)시켰다. 수령이 파견되는 주읍의 관내에는 읍치를 중심으로 그 주위에 직촌(直村)과 임내(任內)가 있었으며, 임내에는 속군(屬郡)·속현(屬縣)을 비롯하여 향(鄕)·소(所)·부곡(部曲)·처(處)·장(莊)이 있었다. 1018년(현종 9)을 기준으로 하여 그 이후부터 속군·속현의 분리 독립, 향·소·부곡 등의 승격, 여러 요인에 의한 종전 임내 등급의 승강, 임내의 이속 등이 빈번하였다. 한편 주읍 소속 임내의 획득과 상실도 국가가 여러 읍을 포상하고 징벌하는 목적으로 실시되었다. 월경지는 주읍에 소속되었던 임내가 분리 독립하거나 이속됨으로써 생성되지만, 그것이 고려 후기 내지 고려 말 조선 초로 내려옴에 따라 형성 배경도 성격이 달라진다. 이후 조선 시대에 정비를 거쳐 1906년에 월경지는 완전히 소멸되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영정장(永丁莊)은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현 내 서쪽에 위치하였다고 한다.

[관련 기록]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에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현 내에 거창군 가조현의 월경지인 ‘영정장’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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