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1041
한자 巨濟縣
영어공식명칭 Geojeh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배상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시행 시기/일시 1018년(현종 9)연표보기 - 거제현에 현령을 파견함
시행 시기/일시 1414년(태종 14) - 거제현과 거창현을 제창현으로 통합
시행 시기/일시 1415년(태종 15) - 제창현 폐지
시행 시기/일시 1422년(세종 4) - 거제현의 치소 이동 종결
시행 시기/일시 1664년(현종 5) - 거제현이 명진폐현 서쪽 3리 거리로 치소 이동
시행 시기/일시 1711년(숙종 37)연표보기 - 거제현이 거제부(巨濟府)로 승격됨

[정의]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 사이 거창 지역에 임시로 치소를 두고 주민들이 들어와 살았던 현재 경상남도 거제시의 고려~조선 시대 지명.

[개설]

거제현은 1018년(현종 9) 현령이 파견되면서 주읍이 되었다. 13세기 내우외환(內憂外患)으로 치소(治所)를 내륙인 오늘날 거창군 지역에 해당하는 가조현(加祚縣)으로 옮기게 되었다. 1414년(태종 14) 거제현거창현과 병합하여 제창현(濟昌縣)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제창현은 이듬해 혁파되었고 거제현은 1422년(세종 14) 본 섬으로 되돌아갔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거제(巨濟)’라는 지명은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붙인 것이다. 이는 757년(경덕왕 16)의 이른바 ‘한화 정책(漢化政策)’과 맞물린 것으로, 지방의 군현을 개편하여 중앙의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경덕왕의 국정 운영책과 맞물린 조처였다. 비가도(比加島), 조음도(助音島) 등이 있었으며, 아주현(鵝洲縣)·송변현(松邊縣)·명진현(溟珍縣) 등 3개의 속현이 있었다.

[관련 기록]

거제현에 관해서는 『삼국사기(三國史記)』와 『고려사(高麗史)』·『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여지도서(輿地圖書)』 등을 참고할 수 있다. 다만 거제현의 거창 지역으로의 이주에 대해서는 약간씩 기록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등에는 거제현의 이주가 원종왜구의 침입 때문이라 적고 있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 등에는 거제현삼별초(三別抄) 사건으로 인해 가조현으로 와서 임시로 치소를 두고 조선 세종 때까지 머물렀다고 적고 있다. 이에 대하여 고려 원종 대는 왜구의 침입이 없었을 뿐 아니라 삼별초 세력의 거제도 공략이 두드러졌던 시기인 만큼 삼별초의 활동으로 잠시 이주를 하였다가 뒤이어 왜구가 창궐하게 되면서 150여 년이라는 기간을 계속해 머물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변천]

거제 지역은 원래 바다 가운데 있는 섬으로 거제현의 행정 구역명은 신라 677년(문무왕 17) 설치한 상군(裳郡)에서 비롯하였다. 이후 757년(경덕왕 16) 거제군(巨濟郡)이 되었다. 고려 1018년(현종 9) 현령(縣令)을 두었으며, 1271년 삼별초와 왜적에 대응하기 위한 고려 조정의 해방(海防) 정책으로 섬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게 되자 치소를 현재의 거창군 가조면 일대인 가조현으로 옮겼다. 충렬왕 때 관성(管城)에 합치기도 하였으나 얼마 뒤 되돌려졌다. 1414년(태종 14) 거창현과 병합되어 제창현이라 불리기도 하였으나 이듬해 혁파되었다. 1422년(세종 4) 옛 섬으로 환원시키고 지현사(知縣事)를 파견하였으며, 1664년(현종 5) 명진 폐현(溟珍廢縣)의 서쪽 3리 거리로 치소를 옮겼다. 1711년(숙종 37) 거제부(巨濟府)로 승격되었다.

[의의와 평가]

고려 후기~조선 전기에 걸치는 시기에 내우외환으로 거제현과 거창 지역은 역사를 공유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거창 지역에는 그 자취가 아직도 송변, 아주 등의 지명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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