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터 잘 잡아 왕비 된 이야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1015
한자 -王妃-
영어공식명칭 Jipteo jal jaba wangbi doen iyagi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현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0년 - 「집터 잘 잡아 왕비 된 이야기」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2년 - 「집터 잘 잡아 왕비 된 이야기」, 『거창 민담』에 수록
채록지 「집터 잘 잡아 왕비 된 이야기」 채록지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왕서방|부인|아들|큰딸|작은딸
모티프 유형 풍수|양택 풍수|발복|운명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에서 좋은 집터 덕분에 왕비가 된 자매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집터 잘 잡아 왕비 된 이야기」는 좋은 집터 덕분에 가난한 집 딸이 왕비가 된 명당과 관련된 풍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0년 박종섭이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의 주민 이문구[여, 82세]에게서 채록하였다. 2012년 박종섭 편저의 『거창 전설』(향토 민속 보존 협의회, 2012) ‘풍수’ 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옛날에 성이 왕씨인 사람이 있었다. 왕씨는 늦게까지 남의 집살이를 하다 마흔 살이 넘어서 장가를 가게 되었다. 장가는 갔지만 집이 없어서 왕씨는 같은 동네 머슴들의 도움을 받아 동구 밖에다가 움막 같은 집을 지어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늦게 결혼해서 그런지 왕 서방 부부는 금실이 좋아서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금방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낳았다. 왕 서방네는 비록 풍족하지는 않지만 재미나게 살았다. 하루는 도사가 탁발을 나와서 조금이나마 공양을 했다. 도사가 왕 서방네 집을 둘러보더니 집터가 앞으로 만대유전(萬代遺傳)하고 잘살게 될 터니 떠나지 말라고 했다. 왕 서방은 항상 도사의 말을 마음속에 늘 품고 살았다.

왕 서방의 아들은 툭하면 사고를 치고 말썽을 많이 부렸다. 반면에 두 딸은 오빠와 달리 공부도 열심히 하고 착실해서 동네 사람들이 서로 며느리를 삼으려고 했다. 두 딸이 책을 구해 와서 읽고 있으면 왕 서방은 없는 집 딸이 공부해서 뭣하냐고 하면서 길쌈이나 부지런히 하라고 했다. 그래도 딸들은 아들만 공부하라는 법이 어디 있냐면서 배워야 사람 구실을 하고, 또 언젠가는 써먹을 데가 있을 것이라며 공부를 열심히 했다. 딸들이 그렇게 말을 하니 왕 서방은 억지로 공부를 못 하게 할 수도 없어 내버려 두었다. 큰딸이 열다섯 살, 작은딸이 열세 살이 되었을 때 나라에서 과거 시험이 있었다. 두 딸이 부모에게 한양에 과거를 보러 가겠다고 했다. 왕 서방은 여자가 되어 가지고 무슨 과거를 보느냐며 길쌈이나 열심히 하라고 했다. 그래도 두 딸이 과거를 보러 간다고 고집을 부리니 부인이 이웃에서 남자 헌 옷을 얻어다 주었다. 두 딸은 남장을 하고 한양으로 향했다. 날이 저물어 두 딸은 주막에서 자게 되었는데, 주막 주인이 두 딸을 보더니 옷이 너무 초라하다면서 죽은 아들의 옷과 가죽신을 내주었다. 그래서 다음 날 두 딸은 새 옷을 입고 새 신으로 갈아신은 뒤 한양으로 길을 떠났다. 또 날이 저물어 한 주막에 들어갔다. 그러자 주막 주인이 어젯밤 꿈속에서 청룡 한 쌍이 마루에 앉은 것이 보이더니만 오늘 두 사람을 보니 과거를 보면 장원 급제를 하겠다면서 밥값을 안 받았다. 두 딸이 떠나려고 하니 주막 주인이 노자를 하라며 돈 열 냥을 주었다. 두 딸은 주막을 나와 다시 한양으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한양에 도착해서 두 딸이 필묵을 사러 갔더니, 필묵집 주인이 어젯밤 꿈에 청룡 한 쌍이 가게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두 사람을 보니 급제를 할 것 같다면서 좋은 필묵을 내주고 돈을 안 받았다. 그렇게 해서 두 딸은 과거를 보았고 둘 다 급제를 했다. 큰딸은 나주 목사, 작은딸은 광주 목사로 제수되었다. 쌍가마를 두 딸은 수많은 나졸들을 이끌고 고향 집이 있는 나주로 내려갔다.

과거 급제를 하면 원래 임금이 내리는 홍패를 가지고 집에 돌아와서 도문(到門) 잔치를 했다. 그러나 두 딸은 수많은 나졸들을 이끌고 수수깡으로 만든 오두막인 자기 집으로 갈 수 없어서 큰집 하나를 빌렸다. 그러고는 밤중에 몰래 자기 집으로 갔다. 왕 서방네는 자기 딸들인 줄도 모르고 벌벌 떨었다. 두 딸은 부모를 안심시키고 절을 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임금에게 알릴 것이니 절대로 나주 목사와 광주 목사가 자기 딸이라고 말하고 다니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고는 큰딸은 나주 관아로, 작은딸은 광주 관아로 갔다. 큰딸은 형방과 이방에게 고을의 죄인 명부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명부를 보니 자신의 오빠가 절도죄로 잡혀 있었다. 그래서 죄인들을 불러서 사정을 들어 보고 억울하게 잡혀 오거나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은 사람은 모두 풀어 주라고 했다. 자신의 오빠도 곤장을 몇 대 맞고 풀려났다. 흉년이 들자 나주 목사가 구휼미를 풀어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자, 나주 백성들이 모두 새로 온 나주 목사가 훌륭하다고 칭찬했다. 인물도 좋고 하니 나주 토호들이 서로 큰딸을 사위 삼으려고도 했다. 그러나 큰딸은 신병이 있어 결혼을 하지 못한다고 모두 거절했다. 나주 관아의 기생들이 수청을 들려고도 했는데 그 역시도 신병이 있다며 모두 거절했다.

두 딸이 각각 나주 목사, 광주 목사로 부임한 지 5년 정도 되었을 때, 두 딸은 임금에게 자신들이 여자라는 것을 알려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두 딸은 입궐해서 임금에게 자신들이 임금을 속였으니 죽여 달라고 했다. 임금은 나주 목사와 광주 목사가 어진 목민관이라고 칭송이 자자해서 한양으로 불러올리려고 했는데, 두 딸의 실토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런데 가만 보니 두 딸이 모두 미인이었다. 임금은 두 사람을 모두 파직시키고 왕비로 삼았다. 두 딸이 왕비가 되니 왕 서방네가 살던 곳에 새로 대궐 같은 집이 지어졌다. 그 뒤 왕 서방의 후손들은 대대손손 높은 벼슬을 하면서 부자로 살았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집터 잘 잡아 왕비 된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좋은 집터 덕분에 가난한 집 딸이 왕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연히 얻은 집터가 명당이었던 까닭에 왕 서방과 딸들은 당대에 큰 복을 받았다. 집터를 잘 써서 딸이 왕비가 되었으니, 이 설화는 주택을 길지에 조성함으로써 복을 구하는 것인 양택 풍수 설화에 해당된다. 이러한 풍수 설화에는 자손의 번성과 일가의 번영을 소망하는 의식이 담겨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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