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타작 소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967
한자 -打作-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 시기/일시 1987년 7월 26일 - 「벼타작 소리」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가지리 개화에서 채록
채록 시기/일시 1989년 8월 20일 - 「벼타작 소리」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둔마리 대촌에서 채록
문화재 지정 일시 2004년 10월 21일 - 「거창 일 소리」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
채록지 「벼타작 소리」 채록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가지리 개화 마을 지도보기
채록지 「벼타작 소리」 채록지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둔마리 대촌 마을 지도보기
성격 노동요
토리 우조
출현음 솔라도레미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에 전승되는 노동요.

[개설]

가을이 되면 벼를 베어 타작을 한다. 벼타작은 한 묶음의 볏단을 공상에 힘껏 때려서 낟알을 털어 내는 힘든 노동인데 미처 떨어져 나가지 않은 벼는 여인들이 대나무나 싸리나무 홀키를 사용하여 마무리를 지었다. 거창 지역에서는 탈곡기가 개발되기 전에 벼타작을 하면서 부르던 소리가 발굴, 전승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1987년 7월 26일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가지리 개화에서 이석기[남, 당시 73세], 1989년 8월 20일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둔마리 대촌에서 한병도[남, 당시 59세] 등으로부터 채록하였다.

[구성 및 형식]

선후창으로 된 사설 민요로 두 토막 4·4조의 기본 음수율을 지니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3·4조 또는 5·4조의 변이형이 나타난다. 선창자가 앞소리를 메기면 후창자가 “오호 방아여”라며 뒷소리를 받는다. 장면이 계속 반복되는 구조이다.

[내용]

풍년이 들어 수확하고 타작을 하는 농군들은 신명 나고 즐겁기만 하다. 공상에 볏단을 때릴 때 튕겨 나온 벼의 티가 몸에 들어간 것을 걱정하면서도 고방에 가득 찰 나락을 생각하니 노동은 신이 날 뿐이다. 거창 지역의 「벼타작 소리」는 풍농에 감사하고, 착취와 수탈에 대한 풍자를 통해 밝고 건강한 민중 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왕조 시대 양반들이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들을 어떻게 착취하고 수탈했는지는 “씨나락 한 말 장 내놓고/ 타작마당 들어서서/ 한 섬 달라고 떼를 쓰네”라는 구절에 나오는 김풍월의 행위를 보면 알 수 있다. 노랫말 일부는 다음과 같다.

[앞소리] 오호 방아여/ [뒷소리] 오호 방아여/ [앞소리] 방아 소리 참 잘하지/ [뒷소리] 오호 방아여/ 누구한테 배왔는고/ 방아 소리 참 잘하네/ 백옥 같은 이내 몸에/ 티 드갈까 염려로다/ 금년이라 한 해 동안/ 모를 심어 가꾸어서/ 풍년 농사 잘 지었네

[현황]

노동요가 거의 소멸된 현실에서 경상남도 거창군은 1970년대부터 민요 조사를 하였다. 「거창 일 소리」가 2004년 10월 21일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됨으로써 그중 제7과장인 「벼타작 소리」는 무형문화재 거창 전수관을 통해 전수 및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의의와 평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경상남도 거창군에 그 원형이 전승되는 민요이다. 2003년 제44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 경상남도 대표단이 「거창 일 소리」로 경연에 참가하여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 전승되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