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939
한자 潘腆
이칭/별칭 沈腆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심민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388년 - 반전 왜구에게서 아버지 구출
거주|이주지 반전 거주지 - 거창 안음현
사당|배향지 벼루 바위[마슬봉, 마슬암, 상혈암]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금원산지도보기 동쪽
성격 효자
성별

[정의]

고려 후기 거창 출신의 효자.

[개설]

반전(潘腆)[?~?]은 고려 우왕 때 아버지가 왜구에게 잡혀가자 죽음을 무릅쓰고 직접 왜구의 소굴로 들어가 아버지를 구해 온 효자이다.

[가계]

반전안음현 사람으로 벼슬은 산원(散員)이었다. 『고려사』에는 ‘반전(潘腆)’이라고 되어 있으나, 『세종실록』에는 ‘심전(沈腆)’으로 기록되어 있다.

[활동 사항]

고려 우왕 14년(1388)에 왜구의 창궐이 빈번하던 시기에 거창 안음현에 살던 반전 또한 왜구의 피해를 입게 되었다. 갑자기 쳐들어온 왜구에게 반전의 아버지는 목을 매인 채 끌려갔다. 이에 반전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왜적의 진중으로 들어가 가지고 갔던 은괴와 은으로 만든 띠 등과 아버지를 교환해 왔다. 반전의 요청에 왜적도 그 효성에 감복하여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고 한다. 이에 조선 조정에서 반전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정려하였다. 또, 반전은 왜구를 피해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업고 금원산을 올랐는데, 무릎으로 바위를 기어가던 중 무릎이 쓸려 피를 흘리게 되었다. 그가 흘린 핏자국이 아직도 바위에 남아 있어 마을 사람들은 그 바위를 ‘마슬암’, ‘마슬봉’, ‘벼루 바위’, ‘상혈암’ 등으로 부른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반전이 아버지를 업고 왜구를 피해 무릎으로 바위를 기어오르며 흘린 피가 지금도 남아 있어 이 바위를 ‘피 발린 바위’, ‘벼루 바위’, ‘마슬암’이라고 한다. 이 바위는 현재 거창군 위천면 금원산 동쪽 기슭에 있다.

이후 나라에서 반전의 효행을 기려 원학동 입구 바위에 ‘효자 반전 구거동문(孝者潘賟舊居洞門)’이라고 새겨 정려하고, 그 바위를 ‘반전암’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도로 확장 공사로 사라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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