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936
한자 金昌洛
영어공식명칭 kimchangrak
이칭/별칭 구계(龜溪)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태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효자
성별
본관 선산(善山)

[정의]

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효자.

[개설]

김창락(金昌洛)[?~?]은 가난한 살림에도 부모를 모시는 데 정성을 다하여 토끼와 꿩이 집으로 들어오는 신이한 일을 있게 한 효자이다. 이에 유림에서 여러번 포상하였다고 전한다.

[가계]

김창락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호는 구계(龜溪)이다. 선산 김씨는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는 통일 신라 때 인물인 김선궁(金宣弓)이다. 조선 후기 무오사화 때 17세 보령 현감 김수양(金粹讓)이 거창(居昌) 가조(加祚) 대초(大楚)에 이거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18세 봉직랑(奉直郞) 김연(金縯) 대에 거창 남상(南上) 대산으로 이주하여 집성촌을 이루면서 거창에 선산 김씨들이 세거하게 되었다.

[활동 사항]

김창락은 집이 매우 가난하여 아버지가 병이 들어도 약을 구할 여력이 없었다. 이에 아버지의 병에 온천이 효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든 아버지를 업고 온양으로 가서 온천에 목욕을 시키니 병이 나았다고 한다. 김창락의 어머니도 설사병이 있어서 근심하였는데 우연히 집으로 토끼가 스스로 들어와 이를 잡아 고아서 지극히 봉양하였더니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 초상을 당하여 장례를 치를 때에는 꿩이 부엌으로 날아들어 그것으로 제수 음식을 장만하여 상을 치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효성으로 여러 번 유림에서 포상이 있었다. 김창락이 사망한 후 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이 묘갈을 지었다.

[상훈과 추모]

『교남지』에 따르면 유림에서 여러 번의 포상이 있었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남아 있지는 않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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