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924
한자 曺植
이칭/별칭 남명(南冥),건중(楗中)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채광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01년연표보기 - 조식 출생
몰년 시기/일시 1572년연표보기 - 조식 사망
추모 시기/일시 1576년 - 조식 덕천 서원 배향
추모 시기/일시 1576년 - 조식 용암 서원 배향
추모 시기/일시 1609년 - 조식 신산 서원 배향
추모 시기/일시 1615년 - 조식 영의정 증직
출생지 조식 출생지 -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묘소|단소 조식 묘소 -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사리
사당|배향지 덕천 서원 -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원리 222-3
사당|배향지 용암 서원 -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 616-4
사당|배향지 신산 서원 -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주동리 737
성격 문인
성별
본관 창녕(昌寧)

[정의]

조선 전기 거창에서 강학 활동을 했던 학자.

[가계]

조식(曺植)[1501~1572]의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자는 건중(楗中), 호는 남명(南冥),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아버지는 승문원 판교(承文院判校) 조언형(曺彦亨)이며, 어머니는 이국(李菊)의 딸 인주 이씨(仁州李氏)이다.

[활동 사항]

조식은 1501년(연산군 7)에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서 태어났다. 조식은 51세 때와 66세 때 두 번 거창에 왔다. 51세 때에 조식오건(吳健), 노진(盧禛), 강익 등과 함께 방문하여 강론하였다. 이후 66세 때에 다시 방문하여 1월에는 노진, 오건, 김우옹, 김신옥, 정복진, 도희령, 정유명, 임희무, 강익 등이 지곡사(智谷寺)에 모여서 강론하였고, 2월에는 단속사(斷俗寺)에서 이정, 조종도 등과 함께 강학하였다. 3월에는 노진, 강익, 하항, 조종도, 하응도 등과 함께 갈천으로 가서 강학하였다. 이처럼 거창을 방문하여 강학을 한 결과 거창 출신의 학자로 정유명(鄭惟明), 김신옥(金信玉), 성팽년(成彭年), 임운(林芸), 전팔고(全八顧), 전팔급(全八及) 등이 남명의 문인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거창에 남명의 학풍이 퍼지게 될 수 있었다. 또한 남명 조식은 거창을 두 번 방문하였지만 조식의 영향은 이후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을 때 의병 창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남명의 문인으로 정유명, 윤경남, 성팽년, 유중룡, 문위, 전팔고, 전팔급, 변혼, 김신옥 등이 임진왜란 때 거창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들은 거창 의병 대장인 김면의 휘하에서 거창을 지키면서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우게 된다. 이를 통해 남명 조식이 거창 지역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문과 저술]

조식의 저서로는 『남명집(南冥集)』과 『남명학 기유편(南冥學記類編)』·『신명사도(神明舍圖)』·『파한 잡기(破閑雜記)』·『남명가(南冥歌)』·『권선지로가(勸善指路歌)』가 전한다.

[묘소]

조식의 묘소는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사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조식 사후 대사간에 추증되고 1615년(광해군 7) 영의정으로 증직되었으며, 1576년(선조 9)에 산청의 덕천 서원(德川書院), 합천의 용암 서원(龍巖書院)에 배향되었으며 1609년(광해군 1)에 김해의 신산 서원(新山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 거창군사 편찬 위원회, 『거창군사』(거창군, 1997)
  • 서원 연합회(http://www.seowonstay.com)
  • 한국학 중앙 연구원 한국 역대 인물 종합 정보 시스템(http://people.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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