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918
한자 全永昌
분야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신용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7년 12월 26일연표보기 - 전영창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36년 3월 - 전영창 신흥 학교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38년 4월 - 전영창 고베 중앙 신학교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47년 4월 - 전영창 웨스트민스트 신학교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48년 - 전영창 웨스턴 신학교로 전학
수학 시기/일시 1953년 - 전영창 콘코디아 신학 대학원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55년 - 전영창 콘코디아 신학 대학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56년 4월 12일 - 전영창 거창 고등학교 교장 부임
몰년 시기/일시 1976년 5월 20일연표보기 - 전영창 사망
출생지 전영창 출생지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 1594번지
학교|수학지 안성 초등학교 - 전라북도 무주
학교|수학지 신흥 학교 - 전라북도 전주
학교|수학지 고베 중앙 신학교 - 일본 고베
학교|수학지 웨스트민스트 신학교 - 미국 펜실베니아
학교|수학지 웨스턴 신학교 - 미국 미시간주 홀란드
학교|수학지 콘코디아 신학 대학원 - 미국 세인트루이스
활동지 샛별 초등학교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중앙리 387 지도보기
활동지 거창 초등학교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중앙리 411 지도보기
묘소 전영창 묘소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중앙리 411 거창 고등학교 사택 뒤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교육자
성별
본관 천안
대표 경력 거창 고등학교 교장

[정의]

경상남도 거창에서 선구적인 기독교 전인 교육을 실천한 교육자.

[개설]

전영창(全永昌)[1917~1976]은 신사 참배 반대 운동으로 투옥된 적이 있는 독립운동가이자 유신 체제에 반대한 교육자이다.

[활동 사항]

전영창은 1917년 12월 26일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 1594번지에서 태어나 안성 초등학교와 전주 신흥 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36년 3월 신흥 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초등학교 촉탁 교사, 야학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길러 주다 일제 경찰에게 탄압을 받았다.

1938년 4월 신흥 학교 교장 린턴의 후원으로 일본 고베 중앙 신학교에 입학한 전영창은 재학 중 우치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아 성경으로써 민족을 구원하겠다고 결심하였다. 전영창은 한글 신문 폐간, 신사 참배, 창씨개명 등을 비판하였으며, 일제의 패망을 예상하고 독립운동을 준비하다가 1941년 12월 9일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2년 10월 10일 기소되어 12월 3일 고베 재판소에서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 유예 5년을 선고받고 석방되어, 주거 제한 조건으로 귀향하였다.

전영창은 1945년 9월 미군 부대 통역관 시험에 합격하여 미군 제24군단 제7사단 군종무실에 근무하던 중 미국인 군목의 도움으로 1947년 4월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이듬해 웨스턴 신학교로 전학하여 수학하던 중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민족을 돕고자 조기 졸업장을 받고 귀국하였다. 1951년 5월에 부산에서 임시 병원[현 고신 대학교 복음 병원의 전신]을 설치하여 피난민들을 치료하였다. 1953년 콘코디아 신학 대학원에 입학, 1955년 12월 10일에 학업을 마치고 1956년 2월 귀국하였다.

전영창은 1956년 4월 12일 거창 고등학교 제3대 교장으로 부임, 학생 8명으로 교육을 시작하였다. 1961년 교사를 신축하였고, 학교를 명문으로 성장시키고 지역민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였다. 그 공로로 1967년 10월 18일 경향 신문사 주최 ‘국민이 주는 희망의 상’을 수상하였다. 이 상금으로 샛별 초등학교를 설립하였다.

1969년 6월 19일 거창 고등학교 학생들이 삼선 개헌 반대 시위를 일으켰을 때, 전영창은 경상남도 교육감의 주동 학생 처벌 요구를 거부하여 교장 승인이 취소되었다. 1970년 2월 26일 대구 고등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그해 12월 승소하였고, 1971년 4월 28일 대법원 상고심에서도 승소하여 교장으로 복귀하였다.

1972년 11월 군내 교사들을 동원한 어용 집회에 연사로 초빙된 전영창은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라고 강연하여 박정희 독재 정권을 비판하였다. 1973년 미국의 교회와 친우들의 후원으로 학교 교사를 신축하였고[현 거창 고등학교 교사], 1976년 네덜란드 교회 연합회의 후원으로 직업 보도관을 건축하던 중 1976년 5월 20일 과로와 폐혈증으로 숨졌다.

[상훈과 추모]

전영창은 경향 신문사 주최 ‘국민이 주는 상’을 수상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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