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905
한자 慎炳禧
영어공식명칭 Sin Byeong Hee
분야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심옥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4년 12월 26일연표보기 - 신병희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24년 3월 30일연표보기 - 신병희 사망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일본 심문 과정에서 본인이 주도자라고 주장

[정의]

일제 강점기 거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전국적인 3·1 운동과 흐름을 같이하여, 1919년 3월 21일 가조면 석강리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마을 어귀 정자나무 아래에 모여 거창 3·1 만세 운동을 논의하였다. 그리고 3월 22일 거창읍 장날 거사를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대표자와 5인의 책임 대표를 선출했다. 신병희는 5인 대표 중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만세 운동의 준비 과정에서 사전 계획한 정보가 누설되면서 핵심 인물들이 거창 헌병 분대의 일본 헌병에 의해 수감되어 고문을 당했다. 신병희는 자신이 주모자라고 하며 당당히 맞선 인물이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22일 가조면가북면 일대에는 거창 장날을 기하여 지역민 주도의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다. 그 전날인 3월 21일에 일본 경찰은 사전 정보를 통해서 만세 시위에 가담했던 주민 60여 명을 체포했다. 당시 체포된 주민들은 총칼을 든 일본 경찰에 항거하며 당당하게 맞섰다. 일본 경찰은 거창 주민의 저항이 심각해지자, 주도자를 색출하기 위해 체포된 이들을 거창읍 일본 헌병 분대로 압송했다. 그리고 심문 과정에서 신병희에게 일본 헌병은 주모자가 누구인지 심문을 하며 다그쳤다. 이에 신병희는 체포된 이들 중에서 당당하게 나서며 자신이 주모자이며 대표자라고 주장했다. 체포된 현장에서도 당당히 맞섰던 의연한 행동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지만, 이후 그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가조·가북 3·1 운동의 사상자, 수형자 및 부상자 명단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았고, 22일 거창 3·1 운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체포된 점으로 볼 때, 주도 인물의 대열에 그도 포함되었다고 유추된다. 일본 경찰의 심문 과정에서 의기있는 행동을 보여 준 그의 활동만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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