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몽룡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883
한자 劉夢龍
영어공식명칭 Yumongnyong
분야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배병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2년 12월 21일연표보기 - 유몽룡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38년 - 유몽룡 광주 서 중학교 입학
활동 시기/일시 1938년 - 유몽룡 서중 독서회 조직
활동 시기/일시 1941년 3월 - 유몽룡 무등회 조직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42년 1월 - 유몽룡 구속 수감
몰년 시기/일시 1953년 8월 20일연표보기 - 유몽룡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2년연표보기 - 유몽룡 건국 포장 추서
출생지 유몽룡 출생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정장리 876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유몽룡 거주지 - 광주부 북정 142
학교|수학지 광주 서 중학교 - 광주광역시 북구 누문동 144
성격 독립운동가[학생 운동]
성별
대표 경력 학생 비밀 결사 무등회 조직, 활동

[정의]

일제 강점기 광주 서 중학교의 학생 운동을 이끈 거창 출신 독립운동가.

[개설]

유몽룡(劉夢龍)[1922~1953]은 1922년 거창군에서 태어나 1938년 광주 서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서중 독서회(西中讀書會)를 조직하고, 1941년 이를 무등회로 개편하여 일제의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토론하였다. 1942년 조직이 발각되어 경찰에 체포되었고,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활동 사항]

유몽룡은 1922년 12월 21일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정장리 876번지에서 태어났다. 1938년 광주 서 중학교에 입학한 유몽룡은 주만우(朱萬尤)·강한수(姜漢秀) 등과 함께 ‘서중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광주 서 중학교는 1929년 전국적 학생 시위로 확산되었던 광주 학생 운동의 진원지 광주 고등 보통학교[광주 고보]가 교명을 바꾼 것인데, 학생들에게는 광주 고보의 항일 정신인 서중혼과 교풍을 지키고 계승하고자 하는 의식이 있었다. 따라서 광주 학생 운동 이후에도 일제의 지배와 교육 정책에 항거하는 학생들의 비밀 결사가 끊이지 않았고, 유몽룡의 독서회도 그 일환이었다.

1941년 3월 유몽룡은 자신의 집[광주부 북정 142]에서 기환도(奇桓度)·주하준(朱夏俊)·나금주(羅金桂) 등과 함께 서중 독서회를 무등회(無等會)로 확대·개편하였고, 창씨개명·일어 상용·징병제 등 일제의 정책에 반대하는 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유몽룡은 “독립이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조선을 일본의 자치령으로 해야 하며, 이를 위해 우리 조선인은 민족적으로 단결하여 문화 수준을 높여서 일본인과 동등한 수준까지 도달시켜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1942년 1월 무등회는 일제 경찰에 발각되었다. 이로 인해 유몽룡은 구속되어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고, 학교에서 퇴학당하였다. 해방 후 석방되었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1953년 3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2년 유몽룡에게 건국 포장이 수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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