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875
한자 李相滿
분야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서용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8년 7월 5일연표보기 - 이상만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0년 9월 - 이상만 군사 주비단 단원으로 활동하다 일경에 체포
활동 시기/일시 1922년 4월 13일 - 이상만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6월 언도
활동 시기/일시 1927년 7월 20일~1930년 - 이상만 신간회 마산 지회에서 활동
몰년 시기/일시 1938년 10월 22일연표보기 - 이상만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7년연표보기 - 이상만 건국 포장 추서
출생지 이상만 출생지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64
활동지 신간회 마산 지회 - 경상남도 마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군사 주비단 단원|신간회 회원

[정의]

일제 강점기 거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상만(李相滿)[1898~1938]은 1898년 7월 5일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64번지에서 태어났다. 평소 항일 의식이 투철했던 이상만은 조국의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군사 주비단(軍事籌備團)의 단원이 되어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였다. 군사 주비단은 국내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상해의 임시 정부로 보내기 위해 이민식(李敏軾)을 사령장(司令長), 여준현(呂駿鉉)을 재무장(財務長), 장응규(張應圭)를 교통장(交通長)으로 하여 1920년 6월에 조직되었다. 이들은 1920년 9월 장응규가 상해에서 가져온 임시 정부 발행 공채 증권(公債證券)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로 계획하고 이상만에게 500원권 공채 증권 1매를 교부했다. 이상만은 이를 건네받아 독립 군자금을 모집하려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22년 4월 13일 경성 지방 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이상만은 출옥 이후에는 신간회(新幹會)에 참여하여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1927년 7월 20일 신간회의 마산 지회(馬山支會)가 설립되자 1930년까지 재무부·조직 선전부·재정부·출판부 등에서 활약하였다. 하지만 끝내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38년 10월 22일 마흔한 살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이상만의 항일 독립운동 공훈을 기려 1997년에 건국 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경성 지방 법원 판결문(1922. 4. 13)
  • 『동아 일보』(1927. 3. 5)
  • 국가 보훈처 독립 유공자 공훈록(http://mpva.go.kr/narasarang/gonghun_list.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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