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859
한자 慎溟翊
영어공식명칭 Sinmyeongik
이칭/별칭 남거(南擧),남강(南岡)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조선
집필자 채광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76년연표보기 - 신명익 출생
몰년 시기/일시 1728년연표보기 - 신명익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50년 - 신명익 정려 하사
출생지 신명익 출생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주|이주지 신명익 거주지 - 경상남도 거창군
사당|배향지 경충사(景忠祠)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 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본관 거창(居昌)

[정의]

조선 후기 무신란 때에 공을 세운 경상남도 거창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거창(居昌)이고 자는 남거(南擧), 호는 남강(南岡)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제용감 직장(濟用監直長) 신선명(愼善明)이고 할아버지는 신경기(愼慶祺)이다. 아버지는 신시중(愼時中)이며, 어머니는 팔거 도씨(八莒都氏)로 도진국(都鎭國)의 딸이다. 부인은 두 명으로 첫 번째 부인은 하빈 이씨(河濱李氏)로 이보(李普)의 딸이고, 두 번째 부인은 단양 우씨(丹陽禹氏)로 우석하(禹錫夏)의 딸이다.

[활동 사항]

신명익(慎溟翊)[1676~1728]은 1676년(숙종 2) 11월 13일에 경상남도 거창에서 태어났다. 1728년(영조 4) 무신난(戊申亂)[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정희량(鄭希亮)신명익을 강제로 연행하였다. 이때 정희량신명익을 위협해서 억지로 좌수에 취임시키려고 하였다. 신명익은 향리인 신극종, 신석현 등과 협력하여 반군의 동태를 보고하고, 향인들의 창의를 재촉하는 통문을 돌렸다. 이에 정희량신명익의 꾀에 속은 것을 알고 신명익의 목을 베려고 하였으나 군중의 동요를 감안하여 죽을 때까지 곤장을 치게 하였다. 이때가 4월 1일이었다. 4월 4일 반군이 완전히 진압되고 그 주동자들도 참살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제는 여한이 없다 하면서 53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상훈과 추모]

무신난 때에 공을 세운 신명익을 기려 1739년(영조 15)에 경충사(景忠祠)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에 설립하였다. 또한 1750년(영조 46)에 내린 충신 정려가 있다. 현재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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