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852
한자 尹東野
이칭/별칭 현와(弦窩),성교(聖郊),소심(小心)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채광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57년연표보기 - 윤동야 출생
몰년 시기/일시 1827년연표보기 - 윤동야 사망
출생지 윤동야 출생지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
거주|이주지 윤동야 거주지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
묘소|단소 윤동야 묘소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둔마리 지도보기
성격 문인
성별
본관 파평(坡平)

[정의]

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문인.

[가계]

윤동야(尹東野)[1757~1827]의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자는 성교(聖郊)이다. 호는 처음에는 소심(小心)이었으나 후에 현와(弦窩)로 바꾸었다. 아버지는 윤석로(尹碩老)이며, 어머니는 최형석(崔衡錫)의 딸 월성 최씨(月城崔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류인로(柳仁老)의 딸 문화 류씨(文化柳氏)이며, 두 번째 부인은 정시형(鄭始亨)의 딸 동래 정씨(東萊鄭氏)이다.

[활동 사항]

윤동야는 1757년(영조 33) 9월 28일에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에서 태어났다. 26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6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 묵헌(默軒) 이만운(李萬運)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두와(蠹窩) 최흥벽(崔興璧), 지애(芝厓) 정위(鄭煒), 지암(遲庵) 이동항(李東沆)과 교유하였다.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시가를 지으며 경전 연구에 전념하였다. 『예기』·『주역』·『춘추』 등의 경전을 그림으로 설명하였으며, 동방 여러 학자들의 문집을 교정하였다. 문장이 자유분방하고, 문체가 고인(古人)의 품격을 본떴다는 평을 받고 있다. 윤동야는 거창 용산에 있는 동계(桐溪) 정온(鄭蘊)의 묘가 무신란(戊申亂) 이후 풀만 무성한 것을 애석하게 여겨 정사(精舍)를 중건하기도 하였다. 1827년(순조 27) 1월 8일에 7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윤동야의 저서로는 『현와집(弦窩集)』이 있다.

[묘소]

거창군 남하면 둔마리 선조(先兆) 아래 건원(乾原)에 윤동야의 묘소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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