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득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824
한자 林得蕃
영어공식명칭 Lim Deukbeon
이칭/별칭 연경(衍卿),석천(石泉)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78년연표보기 - 임득번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07년 - 임득번 진사시 급제
몰년 시기/일시 1561년연표보기 - 임득번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31년 - 임득번 재실인 석천재 건립
추모 시기/일시 1635년 - 임득번 역천사 배향
거주|이주지 경상도 안음현 석천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일대
묘소|단소 빈동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석천재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역천사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지도보기
성격 학자
성별
본관 은진
대표 관직|경력 진사

[정의]

조선 전기 거창 출신의 학자.

[가계]

임득번(林得蕃)[1478~1561]의 본관은 은진(恩津), 자(字)는 연경(衍卿), 호(號)는 석천(石泉)이다. 아버지는 사용(司勇)을 지낸 임자휴(林自庥)이고, 어머니는 사과(司果)를 지낸 허숙달(許叔達)의 딸 의인(宜人) 하양 허씨(河陽 許氏)이다. 할아버지는 의령 현감(宜寧縣監)을 지낸 임천년(林千年), 증조할아버지는 흥위위 보승 별장(興威衛 保勝別將)을 지낸 임식(林湜)이다. 부인은 참봉(參奉)을 지낸 강수경(姜壽卿)의 딸 의인 진주 강씨(晉州 姜氏)다. 임득번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특히 임훈(林薰)·임영(林英)·임운(林芸) 형제가 현달(顯達)[벼슬, 명성, 덕망이 높아서 이름이 세상에 드러남]하였다.

[활동 사항]

안음현 석천에 살았던 임득번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였으며, 학문을 배우는 데 성실했다고 한다. 30세가 되던 1507년(중종 2)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향시(鄕試)에 급제하였으나, 관직에는 뜻을 두지 않았다. 만년에는 고향에서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임득번은 효성과 우애가 타고 났으며, 충성과 신의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생활 규범에 어긋남이 없었고, 사치를 싫어하였다.

[묘소]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빈동(殯洞)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임득번은 1635년(인조 13) 정유명(鄭惟明)과 함께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에 건립되었던 역천사(嶧川祠)에 배향되었다. 역천사흥선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으로 철폐된 후, 복설되지 않았다. 또한 재실로 석천재(石泉齋)가 있다. 석천재는 1631년(인조 9) 임득번의 묘소가 있는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에 건립된 것이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10.13 오탈자 수정 [활동 사항] 20세가 되던 1507년(중종 2)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였다. → 30세가 되던 1507년(중종 2)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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