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809
한자 慎重穆
영어공식명칭 Sinjungmok
분야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하유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2년연표보기 - 신중목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9년 - 신중목 거창읍 협의원 당선
활동 시기/일시 1945년 - 신중목 거창 군수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50년 - 신중목 제2대 국회 의원 당선
활동 시기/일시 1952년 - 신중목 제7대 농림부 장관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60년 - 신중목 농업 협동조합 중앙회 회장 당선
활동 시기/일시 1963년 - 신중목 한국 농민 자주 총연맹 총재로 선출
활동 시기/일시 1981년 - 신중목 민주 농민당 총재로 선출
몰년 시기/일시 1982년 12월 31일연표보기 - 신중목 사망
출생지 신중목 출생지 -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수학지 신중목 유학지 - 일본 도쿄 와세다 대학
성격 관료|국회 의원
성별
본관 거창
대표 관직 국회 의원|거창군수|농림부 장관

[정의]

제2대 국회 의원과 제7대 농림부 장관을 지낸 거창 출신 정치인.

[개설]

신중목(愼重穆)[1902~1982]은 일제 강점기 거창군 서기, 거창읍 협의원을 지냈고, 해방 후 거창 군수, 남조선 과도 입법 의원 민선 경상남도 의원, 제2대 국회 의원, 국민회 경남 본부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50년대 제7대 농림부 장관, 자유당 재정부장, 1960년대 농업 협동조합 중앙회 회장, 한국 농민 자주 총연맹 총재, 1981년 민주 농민당 총재 등을 역임하였다.

[가계]

신중목의 본관은 거창(居昌)이며, 아버지는 신석재(愼奭縡)이다.

[활동 사항]

신중목은 1902년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에서 태어났다. 1918년 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를 수료하고 거창군청에서 근무하였다. 1932년 거창군 서기로 근무할 때 인사 부정 뇌물 사건으로 징역 10개월형을 선고받았다. 1932년 거창읍내 보성 학원 유지회의 이사로 활동하였다. 1936년에 창립된 거창 약주 합명 회사 지배인으로 활동하였으며, 1937년과 1938년 전 조선 주류 품평회에서 우등상을 차지하였다. 1938년에는 거창읍에서 거창 최초의 양어장을 설치하여 물고기를 양식하였다. 1922년에 창립된 거창 인쇄소의 후신으로 출발한 합자 회사 동광사(東光社)에 자본금을 투자하고 운영에 참여하였다. 1939년 정원 11명의 거창읍 협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해방 후 1945년 10월 미군정으로부터 거창 군수에 임명되었다. 1946년 11월에는 남조선 과도 입법 의원 경상남도 의원 선거에서 거창, 함양, 산청, 합천, 창녕, 의령을 포함하는 제5구에 출마해 당선되어, 운수 체신 분과 위원과 특별 위원부 행정 조직부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5월 10일 거창 지역 제헌 국회 의원 선거에 독립 촉성 국민회 선거 후원회의 추천을 받고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49년 6월 9일 결성된 거창 국민회 지부장으로 선출되었다. 1949년 10월 10일 국민회 경남 대회에서 임시 집행 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되었으며, 국민회 경남 본부 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신종목은 국민회를 기반으로 정치 활동을 하였으나, 1950년 5월 30일에 실시된 제2대 국회 의원 선거에 국민회 소속이 아닌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1년 3월 대한 청년단 거창군 단장으로부터 신원면 일대에서 벌어진 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 소식을 접하고, 1951년 3월 10일 국회 제54회 회의에서 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진상 보고와 진상 규명을 요청하였다. 국회 의원 8인으로 구성된 현지 조사단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52년 8월 29일부터 1953년 9월 9일까지 제7대 농림부 장관을 역임하며 농토 확장과 개량, 농업 단체 재편, 협동조합 설치, 농업 생산 자재 적정 가격 배급 등 자급자족을 목표로 하는 긴급 식량 증산 대책을 세워 추진하였다. 농림부 장관에서 물러난 뒤 대한 농민회 최고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953년 10월 자유당 중앙 위원회로부터 재정부장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 의원 선거 때 거창 지역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55년 12월 자유당을 탈당하고, 이범석, 장택상, 배은희 등을 중심으로 한 공화당 결성에 참여하였다.

1960년 7월 9일 농업 협동조합 임시 총회에서 농업 협동조합 중앙회 회장에 당선되어 1961년 3월 초까지 재직하였다. 1963년 4월에 국가 자립, 민족 자립, 농민 자립이라는 강령을 내걸고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며 창립된 한국 농민 자주 총연맹의 총재로 선출되었다. 1967년에는 신민당의 재야 측 17인의 운영 위원으로 뽑혀 활동하였고, 제7대 국회 의원 선거에 신민당 후보로 거창 지역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71년 1월에 윤보선, 박기출, 장준하 등이 중심이 되어 창당한 국민당에서 활동하였다.

1981년 2월 농어민의 권익 대변을 표방한 민주 농민당 총재로 선출되었다. 1982년 12월 31일 81세의 나이로 서울에서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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