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672
한자 居昌龜淵書院觀水樓
영어공식명칭 Gwansuru Pavilion at Guyeonseowon Confucian Academy in Geochang
이칭/별칭 구연 서원 누각,구연 서원 문루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은하리길 100[황산리 76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기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40년연표보기 - 구연 서원 문루 관수루 건축
훼철|철거 시기/일시 1868년 - 구연 서원,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
개축|증축 시기/일시 1930년 - 구연 서원 중건
문화재 지정 일시 2005년 1월 13일연표보기 - 거창구연서원관수루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2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거창구연서원관수루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현 소재지 거창구연서원관수루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769 지도보기
성격 누각/서원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3칸[누각]|4칸[서원]
측면 칸수 2칸[누각]|2칸[서원]
소유자 거창 신씨 요수공파 종중
관리자 거창 신씨 요수공파 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거창 신씨 선현의 추모와 서원의 문생 교육을 위하여 건립한 구연 서원의 문루.

[개설]

거창구연서원관수루거창 신씨 요수공 후손과 고을 사림들이 힘을 모아 1740년(영조 16)에 건립하였다. 조선 전기 안음현 원학동석천(石泉) 임득번(林得蕃)[1478~1561]의 문하에는 아들 임훈(林薰)[1500~1584]과 임운(林芸)[1517~1572] 형제를 위시하여 신권(慎權)[1501~1573]·조숙(曺淑)[1504~1583] 등이 동문 수학하였다. 뒷날 이들은 이 지역의 향촌 사대부 계층을 형성하여 영남 사림파의 일원으로서 출사하였다. 그중 신권은 "사람의 벼슬은 남에게 있고 하늘의 벼슬은 내게 있다."며 은거하여 후학 교육에 힘을 쏟았다. 뒷날 후학들이 신권을 추모하여 1694년(숙종 20) 구연 서원(龜淵 書院)을 만들고 성팽년을 함께 배향하였다. 1808년 신수이(慎守彛)[1688~1768]를 추가 배향하였다. 1740년(영조 16) 관수루를 지어 서원의 문루로 삼은 것은 17세기와 18세기에 이미 향촌 사림 세력이 크게 형성되면서 사림의 위상을 건축물로 표현한 것이다.

[위치]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시외버스 주차장에서 16㎞ 정도 ‘마리-위천’을 거쳐 북상 방면으로 이동하면 길 왼쪽에 수승대 군립 관광지 주차장이 나오고, 관수루는 주차장을 지나 수승대 안쪽 경내에 있다. 누각 뒤편에 비석군, 전사청, 구연 서원, 구연사가 있다. 옆으로는 덕유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냇물이 흐르고, 담장 밖에는 거창 신씨 정려가 두 채 있으며, 건너편에는 수승대 거창 요수정이 있고, 거창 요수정을 지나면 함양재가 있다. 예로부터 안의현에 경치가 좋은 세 동천으로 화림동·심진동·원학동이 있다고 했는데, 그 중 수승대가 있는 원학동은 건물과 자연의 조화가 잘 드러난 곳이다.

[변천]

거창구연서원관수루는 1694년 구연 서원 건립 후 약 50년이 지난 1740년에 요수 후손과 향촌 사림이 세웠다. 1868년(고종 5)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서원이 훼철되면서 관수루도 유학 교육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일제 강점기 1928년에 사우를 복원하고 1930년에 서원을 중건하면서 문루도 다시 제 기능을 찾았다. 서원 강당은 1945년 화재로 소실되었지만 1946년 원형을 복원하였다. 1975년에는 경내 전체가 덕유산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86년 8월 국민 관광 휴양지로 지정되었다.

[형태]

거창구연서원관수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누각 건물로 겹처마로 된 팔작지붕의 기와집이다. 자연 암반을 활용하고, 각 자연 초석 위에 8개의 기둥을 세웠다. 하부 기둥은 둥근 원목을 자연 형태 그대로 사용하여 건축미를 극대화하였고, 기둥 밖의 네 모퉁이에 활주를 세워 하중을 분산시켰다. 누각 아래에는 삼문을 설치하였고, 마루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마루 끝에는 계자 난간을 둘러 안전과 미적 형상을 돋보이게 하였다. 누각의 중방에는 1743년 안의 현감 조영석(趙榮祏)[1686~1761]이 지은 「구연 서원 관수루기」를 위시하여 신수이(慎守彛)의 「관수루」 등 12편의 시문이 걸어서 성리학적 세계관을 표현하였다.

구연 서원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중앙에 강당 2칸을 두고 양쪽에 방을 한 칸씩 두었다. 건물 앞 양쪽에 불을 밝히는 횃대를 두었다. 서원 뒤로 ‘구연사’라는 사당이 있고 서원 앞 오른쪽에 전사청과 비석군이 있다. 비석은 서원 오른쪽에 ‘산고수장비’, ‘석곡 성선생 유적비’, ‘황고 신선생 사적비’, ‘야천 신선생 유적비’가, 왼쪽에는 ‘구연 서원 사적비’, ‘거창 신씨 황산 입향조 승훈랑휘우맹 택리비’가 서 있다.

[현황]

거창구연서원관수루는 16세기 향촌 교육에 힘썼던 신권을 추모하여 후손과 영남 사림이 건립하였다. 서원이 훼철되기 전까지 향촌의 교육과 사림의 자기 수양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1920~1930년대에 와서 다시 사당과 서원을 복원하였다. 현대에 와서는 국민 공원으로서 휴양처로, 거창 국제 연극제와 관련하여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2005년 1월 13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거창구연서원관수루는 조선 시대 노장의 무위자연의 건축 기법을 적용하여 천인합일 사상을 추구한 건물이다. 영남 누정 건축의 표본이 될 정도로 입면의 비례가 아름답고 18세기 조선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 받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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