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671
한자 居昌瀯濱書院
영어공식명칭 Yeongbin Seowon Confucian School
이칭/별칭 영천사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무릉2길 34[무릉리 112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권순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44년연표보기 - 거창 영빈서원이 영빈사로 창건
훼철|철거 시기/일시 1864년 - 영빈사,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
개축|증축 시기/일시 1919년 - 거창 영빈서원 중건
문화재 지정 일시 2001년 12월 20일연표보기 - 거창 영빈서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05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거창 영빈서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현 소재지 거창 영빈서원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 1123 지도보기
성격 서원
양식 한식 와가
정면 칸수 3칸[사당]|5칸[강당]
측면 칸수 1.5칸[사당]|1.5칸[강당]
소유자 동래 정씨 거창 영빈서원
관리자 동래 정씨 거창 영빈서원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1744년 동래 정씨 문중에서 설립한 사설 교육 기관.

[개설]

거창 영빈서원(居昌瀯濱書院)은 1744년에 창건한 서원으로 동래 정씨 정구(鄭矩), 정종(鄭種), 정표(鄭彪), 정응두(鄭應斗), 정시수(鄭時修), 정형진(鄭滎振) 6위를 제향하던 영천사(瀯川祠)에서 출발하였다. 서원 철폐령에 따라 1864년에 훼철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절의, 충효, 성경 정신을 일깨우고자 사림과 후손들이 1919년에 다시 세우고 거창 영빈서원으로 개칭하였다. 강당의 마당에는 1951년에 다시 세운 육현 묘정비(六賢廟庭碑)가 있다.

[위치]

거창 영빈서원은 경상남도 거창군의 동남쪽에 있는 남하면 무릉리에 있다. 황강의 우안에 있는 일산봉 서사면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다. 국도 24호선에 있는 남하면사무소에서 남쪽 방향, 즉 합천호 방향으로 약 230m 정도 진행하면 남하 교회에서 좌회전해서 마을 안쪽으로 약 320m 더 진입하면 거창 영빈서원에 이른다. 주변에는 동래 정씨 집성촌이 있으며, 집성촌안에는 거창 무릉리 정씨 고가[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287호]가 위치해 있다.

[변천]

거창 영빈서원은 1919년에 중건되었으나, 평면의 형식이나 가구의 기법은 조선 후기 이전의 것으로 1744년에 창건되었던 영천사의 모습이나 건축 양식을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형태]

거창 영빈서원은 높은 곳에 사당 영역, 낮은 곳에 강당 영역을 동서 축선상에 배치하였다. 사당인 구인사(求仁祠)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평면은 정면에 툇칸을 두고 배면에 통칸 마루방을 둔 형식이다. 기단은 가공한 석재로 바른층 쌓기로 쌓았으며 초석 역시 가공하여 사용하였다. 기둥은 둥근 기둥과 네모 기둥을 혼용하였는데 마루방 정면에만 네모 기둥을 두었다. 공포는 정면에만 다포식으로 처리하여 구인사의 위계를 표현하였고 또한 단청을 하여 사당의 중요성을 표현한 것을 알 수 있다.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이며 한식 기와로 마무리 하였는데 암수막새를 사용하였다.

사당 정면에는 3칸 규모의 내삼문이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평면은 좌측부터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2칸, 마루 2칸,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은 구인사와 마찬가지로 가공한 석재로 바른층으로 쌓았으며 초석은 역시 가공한 초석을 사용하였다. 기둥은 둥근 기둥과 네모 기둥을 혼용하였다. 둥근 기둥은 정면에만 사용하였고, 공포 양식은 정면에만 장여 수장으로 처리하하였다. 배면에는 장여 수장으로 간략히 처리하였다. 상부 가구는 도리가 다섯 개인 오량 구조이며,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한식 기와를 올렸는데 암수막새를 사용하였다. 강당의 정면에는 대문채가 있는데 광재문(光齋門)으로 정면 3칸의 솟을대문이다.

[의의와 평가]

거창 영빈서원은 사당에서 출발하여 강학의 기능은 없고, 제향의 기능만 있는 문중 서원으로 조선 후기 향촌 사회의 양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지만 일제 강점기에 국난 극복을 위해 중건하여 민족 자존과 지역 교화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2001년 12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0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2.08.04 오탈자 수정 [개설]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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