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606
한자 居昌陽坪里石造如來立像
이칭/별칭 양평리 불상,갓머리부처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노혜3길 6-43[양평리 479-1]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유성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통일 신라 -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1963년 1월 21일연표보기 -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 보물 제377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 보물 재지정
보수|복원 시기/일시 1971년 8월 -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 보수 및 복원
보수|복원 시기/일시 1979년 -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 보호책 신설 및 주변 조경 사업 실시
보수|복원 시기/일시 2000년 3월 -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 보존 처리 및 복원
현 소장처 금용사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양평리 479-6 지도보기
성격 불상
재질 화강석
크기(높이) 370㎝[전체]|275㎝[불상]
소유자 국유
관리자 거창군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양평리 금용사에 있는 통일 신라 후반기에 만들어진 석조여래입상.

[개설]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노혜3길 6-43[양평리 479-1]에 있는 석조여래입상이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377호로 지정되기 이전에는 하반신이 땅속에 묻힌 채로 있다가 1971년 8월 보수 공사 때 주변 석재들을 수습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불상의 사방에 있던 초석 4개를 모아서 건물의 기단 형태로 활용하였다. 당시 방아확으로 사용하던 것을 보개(寶蓋)로 여겨 복원하였고, 주변에 좌대를 이용하여 불상을 세웠다. 또한 배례석으로 사용하는 연꽃 좌대도 주변에 있던 것을 옮겨 사용하고 있다. 원래 이 불상이 있던 절은 노혜사 혹은 금양사라고 전해지며 주변에 흩어져 있던 부재들의 형태나 크기로 미루어 보아 큰 규모의 사찰이 오랫동안 유지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79년에 보호책 신설 및 주변 조경 사업을 실시하였고, 2000년 3월에는 보존 처리와 배면 및 좌대 파손 부위 복원 작업이 있었다.

1995년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 주위에 요사채를 지어 금용사가 들어섰다.

[형태]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은 전체 높이가 370㎝이며, 불상의 높이는 275㎝이다. 크게 대좌(臺座)[불상을 올려놓는 대], 불신, 보개(寶蓋)[보주 따위로 장식된 천개]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좌는 연화문(蓮花紋)[연꽃 모양의 무늬]이 새겨진 원형의 1석만 놓여 있으나 원래의 대좌인지는 알 수 없다. 불신은 한 개의 거대한 화강석으로 된 독립 불상이다. 원각불이며 둥글고 원만한 자비상이며 머리는 나발(螺髮)[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인 부처의 머리털]이라 형태이다. 불상의 머리 위에 올려 있는 보개는 원형이다. 1971년 올려놓은 것으로 원래의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특징]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은 전체적으로 몸체의 굴곡이 뚜렷하고 아랫배가 나왔으며 옆에서 볼 때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양이다. 이는 양감이 풍부하진 않지만 당당한 모습을 갖춘 8세기 중엽의 불상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신라의 변방이었던 경상남도 거창 지역에 거대한 불상을 세움으로써 전략적 요충지로서 거창 지역의 위상을 높이고, 불교 문화의 전파와 통치 이념 확대를 꾀하였다고 볼 수 있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37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