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덕유산 지구 공비 소탕 작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577
한자 智異山 德裕山 地區 共匪 掃蕩 作戰
영어공식명칭 Red Guerrillas Sweep Operation of Jirisan and Deokyusan
이칭/별칭 쥐잡이 작전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지리산, 덕유산 일대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은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단 시기/일시 1951년 11월 - 휴전선 부근 전선 고착화
발생|시작 시기/일시 1951년 11월 16일 - 지리산 덕유산 지구 공비 소탕 작전 시작
전개 시기/일시 1951년 12월 2일~12월 14일 - 지리산 덕유산 지구 공비 소탕 작전 1기 토벌 작전 전개
전개 시기/일시 1951년 12월 16일~1952년 1월 4일 - 지리산 덕유산 지구 공비 소탕 작전 2기 토벌 작전 전개
전개 시기/일시 1952년 1월 4일~1월 31일 - 지리산 덕유산 지구 공비 소탕 작전 3기 토벌 작전 전개
전개 시기/일시 1952년 2월 4일~3월 14일 - 지리산 덕유산 지구 공비 소탕 작전 4기 토벌 작전 전개
종결 시기/일시 1952년 3월 14일 - 지리산 덕유산 지구 공비 소탕 작전 종료
성격 한국 전쟁 시기 후방의 빨치산 토벌 작전
관련 인물/단체 백 야전 사령부|백선엽|남부군|이현상

[정의]

1951년 12월부터 1952년 3월까지 지리산과 경상남도 거창 지역을 포함한 덕유산 일대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한 군경 합동 작전.

[역사적 배경]

1950년 11월 한국 전쟁에 중국군이 참전하자 국군 제11사단과 제8사단이 지리산 일대 빨치산을 토벌하다 전방으로 이동했다. 그 뒤 1950년 말부터 1951년 말까지 후방에서 빨치산의 활동은 극렬해졌다. 이현상을 총사령관으로하는 일명 남부 군단은 후퇴하지 못한 북한 인민군 잔병과 남조선 노동당 출신의 구빨치산들로 구성되어 후방 보급로를 위협하였고, 민간의 동요도 심했다. 이에 1951년 11월 휴전선 부근에서 전선이 고착화되자 최전선에서 2개 사단을 차출하여 지리산덕유산 일대 공비를 섬멸하기 위한 사령부가 만들어졌다.

[경과]

1951년 11월 지리산덕유산 일대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사령관 백선엽의 성을 딴 ‘백 야전 사령부’가 창설되었다. 산하에는 최전선에서 차출한 제8사단과 수도 사단 외에 기존의 서남 지구 사령부, 지리산 지구 경찰 전투 사령부, 남원에 있는 치안국 전방 사령부도 가세하였다. 1951년 12월 1일 서남 지구에 비상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1951년 12월 2일부터 12월 14일까지 공비를 소탕하기 위한 일명 ‘쥐잡이 작전’ 1기가 시작되었다. 2기 1951년 12월 16일~1952년 1월 4일, 3기 1952년 1월 4일~1월 31일, 4기 1952년 2월 4일~3월 14일 등 총 4차례에 걸친 동계 토벌 작전으로 공비의 대부분은 궤멸되었다.

[결과]

백 야전 사령부의 토벌 작전으로 남부군을 비롯한 공비 대부분이 격멸되었고, 후방 지역은 평온을 유지하였다. 백 야전 사령부의 해체 이후에는 전투 경찰이 토벌 작전을 계속하였다. 1953년 9월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이 사살되었고, 1956년에는 빨치산 활동이 완전 소멸하였다.

[의의와 평가]

백 야전 사령부의 공비 토벌 작전은 맹위를 떨치던 빨치산 주력을 단기간에 대부분 섬멸하여 병참선을 확보하고 후방 교란을 잠재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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