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재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513
한자 溫齋集
영어공식명칭 Onjaejip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덕곡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구경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862년연표보기~1939년연표보기 - 『온재집』 강우영이 저술
간행 시기/일시 1970년연표보기 - 『온재집』 강종봉이 간행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5년 - 『온재집』 영인본 간행
소장처 경상 대학교 도서관 - 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 900
소장처 국민 대학교 도서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861-1
소장처 영남 대학교 도서관 -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214-1
성격 문집
저자 강우영(姜友永)
간행자 강종봉(姜鍾鳳)
권책 2권 1책
행자 10헹 24자
규격 반곽(半郭) 18.1×13.6㎝|광곽(匡郭) 26.0×18.5㎝
어미 상 내향 흑어미(上內向黑魚尾)
권수제 온재집(溫齋集)
판심제 온재집(溫齋集)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에서 살았던 근대의 유학자 강우영의 문집.

[저자]

강우영(姜友永)[1862.2.27~1939.12.16]의 자는 신천(信千)·경익(景益), 호는 온재(溫齋)이고,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7세조 강성룡(姜成龍)이 경상남도 진주에서 경상남도 고성군 거류면 용산리로 이거하였다. 증조할아버지 강계주(姜啓周)는 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지냈다. 아버지 강찬문(姜贊文)은 통덕랑(通德郞)이었으며, 어머니 전주 이씨(全州 李氏)는 이현규(李鉉奎)의 딸이다. 경상남도 고성군 거류면 용산리에서 태어났다.

1881년에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덕곡으로 이거하여, 지초(芝樵) 이용의(李鎔義)에게 수학하였다. 1896년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심석재(心石齋) 송병순(宋秉珣)을 찾아가 문인이 되었다. 송병선이 강우영의 자를 ‘경익’으로, 호를 ‘온재’라 지어 주었다. 1905년 송병선이 의거(義擧)할 계획을 세웠는데, 당시 강우영은 병으로 참여하지 못한 것을 평생의 한으로 여겼다. 송병선의 순절 소식을 듣고는 비분강개하며 일체 세상사에 관심을 두지 않고, 김회석(金會錫)·어명우(魚命佑)·표동직(表東直)·변효석(卞孝錫) 등과 교유하며 경서에 대해 강론하였다.

부인은 창원 황씨(昌原黃氏) 황윤연(黃允淵)의 딸이다. 묘소는 경상남도 합천군 봉대산(烽臺山) 계좌(癸坐)에 있다. 저술로 2권 1책의 『온재집(溫齋集)』이 있다.

[편찬/간행 경위]

강우영의 손자 강종봉(姜鍾鳳)이 주도하여 유고를 수집하고, 1956년 윤병수(尹炳守)에게 행장을, 1959년 설병두(薛炳斗)에게 묘갈명을 받았다. 1970년에 강종봉이 직접 가장(家狀)[조상의 행적에 관한 기록]을 지었고, 송재성(宋在晟)에게 서문을, 이봉국(李鳳國)·강정규(姜正奎)에게 발문을 받아 간행하였다. 이를 저본으로 1995년 경인 문화사에서 영인본을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온재집』은 2권 1책의 신연활자본(新鉛活字本)으로 된 문집으로, 크기는 반곽(半郭)[글이 담긴 테두리 안쪽 면]이 18.1×13.6㎝이고, 광곽(匡郭)(匡廓)[판의 사주를 둘러싼 검은 선]은 26.0×18.5㎝이다. 사주 쌍변(四周雙邊)[지면의 네 둘레를 두 개의 선으로 돌림]에 어미는 상 내향 흑어미(上內向黑魚尾)[위쪽의 물고기 꼬리 모양의 검은 어미가 아래쪽을 향하는 형태]이다. 권수제(卷首題)[본문 앞에 나오는 제목]와 판심제(版心題)[책장의 가운데 접힌 곳인 판심에 표시된 책의 이름]는 ‘온재집(溫齋集)’이다. 각 면은 10행 24자로 되어 있다. 경상 대학교 도서관, 국민 대학교 도서관, 영남 대학교 도서관 등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온재집』은 송재성의 서문을 시작으로, 권1에는 시 157제(題)가 실려 있다. 시의 서두는 요순(堯舜)으로부터 송병선에 이르기까지 19인에 대한 시로 시작하는데, 유학의 도통을 스승 송병선에게로 이어 강우영의 학문 연원을 보여 준다. 그 외 송병선, 송병순을 종유(從遊)[학식이나 덕행이 높은 사람을 좇아 함께 지냄]하는 시들이 다수 보인다.

권2에는 서(書) 29편과 잡저 2편, 서(序) 2편, 기(記) 1편, 서후(書後) 1편, 명(銘) 29편, 잠(箴) 3편, 찬(贊) 3편, 상량문 3편, 제문 5편, 행장 2편이 있다. 편지 가운데 송병선에게 올린 「상연재송선생 기해(上淵齋宋先生己亥)」는 1819년에 송병선이 거창 인근 지역까지 유람하며 강론한다는 소식을 듣고 스승 곁에서 문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을 기뻐하는 내용이다. 「상심석재선생 임인(上心石齋先生壬寅)」은 사례 축식(四禮祝式)의 중요성과 이에 대해 질의하는 내용이다. 잡저의 「동행록(東行錄)」은 1901년에 송병선을 모시고 경상북도 성주로부터 가야산을 유람한 내용을 적은 것이다. 「서행록(西行錄)」은 1920년에 송병선을 이장하는 면례(緬禮)에 참석하러 가는 여정을 적은 내용이다. 명(銘)은 혼인의 육례(六禮)와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의 5음, 12율려(律呂)에 각각 명을 붙인 것으로 육례는 삼강오륜에, 5음은 오행(五行)과 오사(五事)에, 12율려는 12달에 비유하여 명을 지은 것이다.

부록에는 강종봉이 지은 가장, 윤병수가 지은 행장, 설병두가 쓴 묘갈명과 이봉국·강정규의 발문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온재집』은 강우영의 학문과 사상, 송병선 문하에서의 위상과 거창 지역에서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문집이며, 거창 지역에서 떨친 송병선의 영향력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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