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산세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497
한자 溫山世稿
영어공식명칭 Onsansego
이칭/별칭 계은 유고(溪隱 遺稿),동산재 유고(東山齋 遺稿),구고 유고(九皐 遺稿)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구경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783년연표보기~1902년연표보기 - 『온산세고』 표응기, 표상규, 표동화가 저술
편찬 시기/일시 1930년대 - 『온산세고』 표동직, 표도환, 표성환, 표정환이 편찬
소장처 거창 문화원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장팔리 7 지도보기
성격 문집|유고집
저자 표응기(表應基)|표상규(表相奎)|표동화(表東華)
편자 표동직(表東直)|표도환(表道煥)|표성환(表成煥)|표정환(表正煥)
권책 1책
행자 10행 자수 부동(不同)
규격 반곽 17.8×27.8㎝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출신의 조선 후기와 개항기 유학자 표응기, 표상규, 표동화 3대의 유고집.

[저자]

표응기(表應基)[1783.12.23~1865.윤5.26]의 자는 평수(平叟), 호는 계은(溪隱), 본관은 신창(新昌)이다. 증조할아버지 표징태(表徵泰)는 1738년에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의 문묘 배향을 소청했다. 아버지는 모암(茅菴) 표이문(表以文)이고, 어머니는 진양 하씨(晉陽 河氏) 하석도(河錫圖)의 딸이다. 경상남도 거창군 모계리(茅溪里)에서 태어났다. 박두재(朴斗在)에게 수학하였고, 1851년에 영사각(永思閣)을 지어 학문을 연구하고 후진을 양성했다. 부인은 문화 유씨(文化 柳氏) 유권화(柳權和)의 딸, 거창 신씨(居昌 愼氏) 신상충(愼尙忠)의 딸, 창원 황씨(昌原 黃氏) 황중원(黃仲源)의 딸이다. 묘소는 경상남도 거창군 사동(蛇洞) 용당곡(龍塘谷) 손좌(巽坐)에 있다.

표상규(表相奎)[1821.1.17~1876.2.24]의 자는 군서(君瑞), 호는 동산재(東山齋), 본관은 신창(新昌)이다. 아버지는 계은(溪隱) 표응기(表應基)이고, 어머니는 창원 황씨이다. 거창군 모계리에서 태어났다. 11대조 모재(茅齋) 표빈(表贇)의 무덤 아래에 동산재(東山齋)를 지어 학문을 연구하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묘소는 거창군 사동 임좌(壬坐)에 있다. 부인은 성산 이씨(星山 李氏) 이익규(李益圭)의 딸, 파평 윤씨(坡平 尹氏) 윤뢰(尹耒)의 딸, 경주 최씨(慶州 崔氏) 최두표(崔斗杓)의 딸이다.

표동화(表東華)[1853.9.19~1902.5.18]의 자는 학래(鶴來), 호는 구고(九皐), 본관은 신창(新昌)이다. 아버지는 동산재(東山齋) 표상규(表相奎)이고, 어머니는 경주 최씨이다. 1898년부터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에게 수학하였다. 부인은 은진 임씨(恩津 林氏) 임수동(林秀東)의 딸이다. 묘소는 거창군 사동 여의전곡(如意田谷) 해좌(亥坐) 언덕에 있다.

[편찬/간행 경위]

『온산세고』는 표동화의 동생인 표동직(表東直)의 주도로 원고를 수집하고, 1919년 김복한(金福漢)에게 서문을 받았다. 발문의 연도가 확실하지 않아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으나, 유고 속의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글 가운데 「동산재계첩서(東山齋契帖序)」가 1930년에 지어진 것으로 볼 때 표동직의 조카인 표정환(表正煥) 형제에 의해 1930년대에 유고 수집을 완료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책의 형태는 문집을 만들기 전 사전 작업용 수집본으로, 『온산세고』는 간행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서지]

『온산세고』는 1책[96장]으로 된 필사본 유고집으로, 유고집의 크기는 반곽(半郭)[글이 담긴 테두리 안쪽 면]이 가로 17.8㎝, 세로 27.8㎝이다. 한 면은 10행이고 한 행의 글자수는 19자~22자로 일정하지 않다. 어미와 각 행에 대한 경계선이 없으나, 만시와 제문이 실려 있는 부분은 경계선이 있다. 거창 문화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온산세고』김복한의 서문을 시작으로, 『계은 유고(溪隱 遺稿)』, 『동산재 유고(東山齋 遺稿)』, 『구고 유고(九皐 遺稿)』가 차례대로 실려 있다.

『계은 유고』는 만시(挽詩) 3수와 제문 1편, 부록으로 행장[박종필], 묘지[표동직, 1898], 묘표[정석채, 1925]와 43인이 쓴 만시, 제문 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산재 유고』는 시 38제(題), 잡저 3편과 발문 1편, 제문 3편이 실려 있고, 부록에는 행장[표동직, 1908], 행록발[송병선, 1903], 묘지[표정환, 1926], 묘표[송병순], 묘갈명[이조영, 1920]과 표동화 사후에 문인과 친구들이 동산재에서의 강학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조직한 동산재계에 대한 설명인 「동산재계첩서」[이도복, 1930]이 있다. 잡저의 「극복설(克復說)」, 「입지설(立志說)」, 「중화설(中和說)」 세 편은 표상규의 학문의 견해를 살펴볼 수 있는 주요 자료들이다. 또한 시 가운데는 동산재를 설립하여 그곳에서 강학 활동을 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구고 유고』에는 시 21제, 제문 2편, 서문 1편이 실려 있고, 부록으로 행장[표동직, 1910], 묘지[표정환, 1928]와 26인이 쓴 만시, 제문 4편이 수록되어 있다. 거창군의 포충사(褒忠祠)를 중수한 것에 대한 감회를 읊은 「근차포충사중수운(謹次褒忠祠重修韻)」과 사설(邪說)이 난무하는 세태 속에서 유학의 도를 걱정하는 「탄세음(歎世吟)」 등의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온산세고』는 거창 지역 유학자 표응기, 표상규, 표동화의 학문과 사상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이들의 포충사, 동산재 등에서의 활동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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