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계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466
한자 愚溪集
영어공식명칭 Ugyejip
이칭/별칭 우계 선생 문집(愚溪先生文集)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태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668년연표보기~1740년연표보기 - 『우계집』 최해두가 저술
간행 시기/일시 1936년연표보기 - 『우계집』 최방환이 간행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7년 - 『우계집』 영인본 간행
소장처 성균관 대학교 도서관 -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3가 53
성격 문집
저자 최해두(崔海斗)
간행자 최방환(崔邦煥)
권책 2권 1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29.3×19.2㎝|반곽(半郭) 19.1×14.6㎝
어미 상 내향 이엽 화문 어미(上內向二葉花紋魚尾)
권수제 우계집(愚溪集)
판심제 우계집(愚溪集)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 최해두의 시문집.

[저자]

최해두(崔海斗)[1668~1740]의 자는 두남(斗南), 호는 우계(愚溪)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아버지는 종모당 최윤정(崔胤貞)이다. 어려서는 가정에서 배웠고 자라서는 김천일과 이백매에게서 배웠으며 이대재, 김방경, 이현원, 이사응, 문천한 등과 교유하였다. 1721년(경종 1) 신축(辛丑) 식년시(式年試) 생원(生員) 3등 47위로 합격하였다. 그러나 시대가 혼란하므로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위기지학(爲己之學)에 힘쓰면서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문장은 꾸밈이 없고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힘썼으며 격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저서로 2권 1책의 『우계집(愚溪集)』이 있다.

[편찬/간행 경위]

1936년 최해두의 8세손 최방환(崔邦煥)이 간행하였다. 이를 저본으로 1997년 경인 문화사에서 영인본을 간행하였다. 현재 성균관 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서지]

『우계집』은 2권 1책의 석인본(石印本)이다. 크기는 29.3×19.2㎝이며, 반곽(半郭)[글이 담긴 테두리 안쪽 면]은 19.1×14.6㎝이다. 사주 단변(四周單邊)[지면의 네 둘레를 하나의 선으로 돌림]에 어미는 상 내향 흑어미(上內向黑魚尾)[위쪽의 물고기 꼬리 모양의 검은 어미가 아래쪽을 향하는 형태]이다. 10행 20자로 되어 있으며, 권수제(卷首題)[본문 앞에 나오는 제목]와 판심제(版心題)[책장의 가운데 접힌 곳인 판심에 표시된 책의 이름]는 ‘우계집(愚溪集)’이다.

[구성/내용]

『우계집』은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이중철(李中轍)의 서문[1928]이, 권말에 이중철의 8세손인 최방환의 발문[1935]이 있다. 권 1에 시 117수·부(賦) 1수·서(書) 1편·제문 2편가 실려 있으며, 권 2는 부록으로 만사·제문·행록·행장·묘표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영물시(咏物詩)·수창시(酬唱詩)·만시가 대부분이다. 모두 성정(性情)으로부터 나온 의사를 꾸밈없이 표현하고 있다. 문(文)도 사의(辭意)를 전달하는 데 힘쓰며 격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편지 가운데 1728년(영조 4) 무신년에 거창 현감 신정모(申正模)에게 보낸 「여신후 정모, 무신(與申侯正模, 戊申)」이 있는데, 그해 3월 정희량의 난에 대하여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당시 적에 의하여 거창이 함락되었을 때 성을 버리고 도망간 일을 질책하고 당시 백성들이 겪는 곤란과 관장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하여 훈시한 내용이다. 또한 1696년에 지은 김천일의 제문이 있다.

[의의와 평가]

『우계집』은 거창 지역에서 발생한 정희량의 난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거창 지역의 경관을 살필 수 있는 시들이 다수 들어 있어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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