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송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464
한자 八松集
영어공식명칭 Palsongjip
이칭/별칭 팔송 선 생문집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용산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태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611년연표보기~1693년연표보기 - 『팔송집』 정필달이 저술
간행 시기/일시 1902년연표보기 - 『팔송집』 정재성이 간행
간행처 용산재(龍山齋) - 경상남도 진주시
성격 문집
저자 정필달(鄭必達)
간행자 정재성(鄭載星)
권책 7권 3책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용산리 출신의 조선 후기 문인이자 학자 정필달의 시문집.

[저자]

정필달(鄭必達)[1611~1693]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사겸(士兼), 호는 팔송(八松)이며. 아버지는 정준(鄭浚)이다. 어려서는 전여이(全汝怡)에게 배웠고, 이후 문경진·박능허·조정립·정온(鄭蘊)·조경(趙絅) 등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33년(인조 11) 생원이 되었고, 1645년 대과에서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사재감 참봉·봉상시 직장을 거쳐서 서학 교수(西學敎授), 사헌부 감찰, 예조 좌랑 등을 두루 지냈다. 부친상을 당하여 사직하고 낙향하였다. 문성후(文誠後)와 함께 팔송정(八松亭)을 세우고 후진 양성에 힘써 ‘팔송 선생(八松 先生)’이라 불렸다. 1657년 예조 좌랑으로 다시 등용되었고, 현종 때는 여러 관직을 거쳐 단양 군수·사예를 지냈다. 숙종 때에는 직강·봉상시 부정·사예를 여러 차례 제수하였으나 병을 핑계로 사양하다가, 1690년(숙종 16)에는 시폐를 시정하는 상소를 올려 왕이 호피를 하사하였다. 1691년에 첨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저서로는 『팔송집(八松集)』이 있다.

[편찬/간행 경위]

정필달의 9대손 정재성(鄭載星)이 산일(散佚)되고 남은 가장 초고와 방손 정광두(鄭光斗)의 등사본을 바탕으로 수집·편차하여 곽종석(郭鍾錫)의 산정을 거쳐 1902년 경상남도 진주시 용산재(龍山齋)에서 활자로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팔송집』은 7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구성/내용]

『팔송집』은 권두에 곽종석이 1902년에 쓴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 1~3은 시로, 오언시와 칠언시가 대부분이다. 저자가 평생 지은 시를 시대순으로 배열하여 3권으로 나누었다. 권 1은 저자가 20세 때부터 50세 때까지 지은 시로서 친척과 친구 사이에 수창한 차운시와 송별시가 많다. 권 2는 53세부터 59세까지 지은 시로 55세에 단양 군수가 되어 중원(中原)[충청북도 충주시 지역에 있었던 지명] 일대를 유람한 시가 특징이다. 권 3은 59세부터 83세까지 지은 시로 금강산, 해금강 및 강릉 일대를 두루 돌아보는 중에 지은 시들이 주를 이룬다. 권 4의 「구언응지소(求言應旨疏)」는 당시의 잘못된 폐단을 간하고 정치의 요점을 논한 내용이며, 「계우소(癸酉疏)」는 정치의 방책을 엮은 글이다. 「대전 시문 성책(對殿試問誠策)」은 전시(殿試)에서 올린 책문으로, 『대학(大學)』의 성의 정심(誠意正心)이나 『중용(中庸)』의 성장(誠章)을 원용하여 지성(至誠)의 성(誠) 문제를 논한 것이다. 권 5는 서(序), 기(記), 발(跋), 명(銘), 잠(箴), 송(頌), 찬(贊)이다. 그중 「자서(自序)」는 선조의 내력과 자신의 전기를 자술한 것이다. 권 6은 잡저(雜著), 상량문(上樑文), 축문(祝文), 제문(祝文), 묘지명(墓誌銘)이다. 권 7은 부록이고 권말에 정재성의 후지(後識)와 간기(刊記)가 있다.

[의의와 평가]

『팔송집』은 시속의 변화와 풍물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자료인 동시에 당시의 도학에 대한 유학자들의 생각을 기술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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