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291
한자 大山 敎會
영어공식명칭 DaeSan Presbyterian Church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청림1길 42[대산리 1075-2]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규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6년 4월 25일연표보기 - 대산 교회가 청림 교회로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0년~1945년 해방 - 대산 교회의 전신인 청림 교회가 일제 탄압으로 선교사 철수 후 잠시 폐쇄
이전 시기/일시 1954년 - 대산 교회 청림 마을에서 대현 마을로 이전
개칭 시기/일시 1954년연표보기 - 청림 교회에서 대산 교회로 개칭
이전 시기/일시 1963년 - 대산 교회가 대현 마을에서 다시 청림 마을로 이전
이전 시기/일시 1976년 - 대산 교회가 청림 마을에서 남상면 대산리로 이전
최초 설립지 청림 교회 -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대산리 1165 지도보기
주소 변경 이력 대산 교회 -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대산리 청림 마을에서 대현 마을지도보기로 이전
주소 변경 이력 대산 교회 -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대산리 대현 마을에서 청림 마을지도보기로 이전
주소 변경 이력 대산 교회 -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대산리 청림 마을에서 거창군 남상면 대산리 1069지도보기로 이전
현 소재지 대산 교회 -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대산리 1075-2 지도보기
성격 교회
설립자 고운서
전화 055-942-6797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대산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 교회.

[개설]

1904년에 호주 선교부에서 파송한 이리사백[Miss. E. M. Ebery] 선교사와 거창 교회 소속 성도인 이만균, 오형선, 배익조 등이 남상면 대산리 청림 마을에 전도를 시작하였다. 이후 신양섭이 강습소를 설치하여 운영하다가 1926년 고운서 전도사가 와서 전도하여 이명근, 박점례, 윤용하 등 10여 명이 모이게 되어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대산리 청림 마을 1165번지청림 교회가 설립되었다.

[설립 목적]

대산 교회는 지역민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1928년 초 2칸 예배당을 25원을 들여서 매입하였다. 호주 선교부가 전도인을 파송할 당시 청림 마을은 70여 호의 마을이었고 2~3호를 제외하고 대부분 소작 농가여서 매우 가난한 동네였다. 그러나 호주 선교부는 청림 마을을 교회 설립의 적지로 보고 전도인을 파송하였다. 호주 선교부에서 파송된 에베리 양은 한국 이름이 이리사백인데 전도 초기에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1926년 고운서 전도사가 와서 전도하여 교회가 설립되었다. 1930년 고운서 전도사가 떠나자 교회가 쇠퇴하였다. 1935년 윤용하와 박점례가 신앙의 힘을 회복하자 15명 이상의 신자가 모였고 예배당을 수리했다. 1936년 이자익 목사가 순회 사역을 하였으며, 1936년 고도열[A.T. Cottel] 목사[선교사]가 백봉순, 유정구에게 세례를 주었다. 1937년 위천 구역에 편입되었고 서환성 전도사가 시무하였으며 그해 11월에 윤용하, 박점례가 집사에 피택되었다.

그 후 일제 탄압으로 거창 지역에서 선교사들이 1940년에 철수하였다. 일제의 탄압이 심하여 해방 전까지 교회는 문을 닫은 것으로 보인다. 1954년 예배 처소를 대현 마을로 이사하여 18평의 흙벽돌 예배당을 지어 예배하면서 교회 이름을 대산 교회로 바꾸었다. 1963년 청림 마을로 다시 이전하여 18평의 흙벽돌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1976년 대산리 1069번지를 매입하여 건축, 증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1년 송순이, 장판순을 명예 권사로 추대했다. 1999년 현재 담임 목사인 허운 목사가 부임했다. 2007년 예배당 헌당식과 함께 표양수를 장로에, 정용순, 이광자, 윤순이를 권사에 임직했다. 2008년 남상 재가 복지 센터[방문 요양, 방문 목욕]를 설치하여 봉사하고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남상 재가 복지 센터를 통해 방문 요양, 방문 목욕을 운영하고 있으며, 청림 마을의 사업인 농촌 체험 휴양 마을 체험관을 운영하고 있다.

[현황]

2016년 7월 현재, 담임 목사는 허운이다. 표양수 장로와 정용순, 이광자, 윤순이, 박춘화 권사를 포함하여 50명의 성도가 있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의 어려운 상황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신앙과 민족 정신을 지켜 낸 교회이며, 이후 한국 전쟁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지역의 영혼 구원을 위해 자발적으로 일어난 교회이다.

[참고문헌]
  • 인터뷰(허운 목사, 2016.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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