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신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133
한자 居昌 神社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배병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4년 8월 19일연표보기 - 거창 신사 설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4년 10월 16일~17일 - 거창 신사 추계 대제
해체 시기/일시 1945년 이후 - 거창 신사 철거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9년 - 거창 신사 터에 충혼탑 건립
최초 설립지 거창 신사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죽전 공원]지도보기
성격 종교 시설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에 설치된 일제의 신사.

[개설]

1924년 8월에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면 상동에 설립된 거창 신사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제신으로 하였다. 일제 강점기 말 황국 신민화를 위해 일제의 강요에 의한 신사 참배가 이루어졌으나, 거창읍 교회 주남선 목사는 끝까지 이에 저항하였다. 해방 후 거창 신사를 철거하고 그 터에 충혼비를 설립하였다.

[설립 목적]

신사(神社)[혹은 신사(神祠)]란 일본의 고유 종교인 신도(神道)에서 신령을 모시는 곳, 또는 신령을 부르는 곳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은 천황제 근대 국가로 탈바꿈하면서 이를 ‘국가 신도(國家神道)’로 높여 장려하였고, 조선을 비롯한 국외 식민지에서까지 통합 이데올로기로 적극 활용하였다.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에 설치된 거창 신사 역시 황국 신민화, 즉, 식민지에서 일본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시키기 위한 의도로 설립되었다.

[변천]

거창 신사(神明神祠)는 1924년 8월 19일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면 상동[현재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죽전 공원]]에 설립되었다. 그 제신은 일본 황실의 조신(祖神)으로 숭배되고 있는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였다. 흔히 일제 강점기의 지역 신사는 주요 부(府)와 군(郡)에 설치된 신사와 면 단위 신사로 구분되는데, 거창 신사는 후자였다. 거창 신사가 자리했던 죽전 공원에는 조선 시대에 성황단이 있었는데, 이를 허물고 건립되었다. 거창 신사 역시 해방 후 철거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일제 강점기 말 황국 신민 서사 낭독, 창씨 개명, 일본어 상용 등과 함께 신사 참배는 황국 신민화를 위한 일상 통제의 주요 수단이었다. 1924년 설립 이래 일본인들 위주로 참배가 이루어졌는데, 1934년 10월 16·17일 거행된 거창 신사 추계 대제는 종래와 달리 조선인과 일본인이 함께 했다고 한다. 1944년 거창읍 출신 학도병이 입영을 위해 출발하기 전 신사 대전에서 봉고식을 행했다.

한편, 일제는 1937년부터 읍 교회와 명덕 여학교에 대해 신사 참배를 강요하였는데, 이에 반대하면서 호주 선교사들은 철수하였고, 명덕 여학교도 폐쇄 위기에 빠졌다. 결국 1938년 장로회가 신사 참배를 결정하였고, 1939년 명덕 여학교 학생들도 이에 따랐으나, 주남선 목사는 읍 교회를 떠나 반대 운동을 벌이다 구속되어 감옥에서 해방을 맞았다.

[현황]

거창 신사의 신직(神職)과 시설에 대한 상세한 현황은 전하지 않는다. 철거된 터에는 1959년 충혼탑이 설치되었는데, 1968년과 1988년 중건을 거쳐, 2011년 ‘충혼탑 현충 시설’로 재단장되었다. 그 곁에는 ‘호국 무공 수훈자 전공비’, ‘베트남[월남] 6·25 참전 기념비’ 등이 자리하고 있어, 호국 공원으로 불린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 신사는 천황제 이데올로기 전파의 거점이었다. 특히 거창 신사거창읍 교회 주남선 목사의 신사 참배 반대 투쟁으로 교회사뿐만 아니라 민족 운동사의 한 장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갖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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