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 일본인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088
한자 在朝 日本人
이칭/별칭 재조선 일본인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가연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창 지역에 거주한 일본인.

[개설]

1876년 개항 이후 조선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직면하였다. 이에 조선인들은 갑오개혁, 광무개혁 등 여러 개혁을 전개하는 동시에 동학 농민 운동, 의병 전쟁 등으로 제국주의 침략을 막아내려 했으나, 결국 1910년 한일 강제 병합으로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일본인들이 신개척지 조선으로 건너왔고 개항장뿐만 아니라 점점 내륙으로도 침투하였다. 이들은 상업가, 군인, 관료, 교원, 지주뿐만 아니라 하층 노동자, 무직자 등 다종 다양한 형태로 1945년 해방 전까지 존재하였다.

[거창의 일본인]

1910년 한일 강제 병합 직후 거창의 일본인 인구는 총 83명[안의군 8명 불포함]이었으나, 1930년에 이르면 일본인 인구는 161호, 총 616명[남자 315명, 여자 301명]에 달했고, 1937년 무렵에는 188호, 총 735명[남자 387명, 여자 348명]이었다. 같은 기간 조선인 인구는 1910년 46,731명에서 1937년 98,409명으로 늘었다. 거창은 비교적 내륙 지역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본인은 관공서에 근무하는 관리였고, 나머지 일본인들은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주로 상업과 대금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거창에 거주한 주요 일본인으로는 거창 번영회[1926년 11월 조직] 부회장 다케나가 간고[武永間吾], 이사 우도노 미사오[鵜殿己三南] 등이 있다. 다케나가는 거창군 가조면 장기리에 있는 제주 조합(製酒組合)의 전무이사를 역임하는 등 상업가로서 활동하였다. 그 외 미야케 구니죠[三宅國藏]는 거창읍에서 미야케구미[三宅助]라는 토목 건축 회사를 경영하면서 토목 건축 청부업 및 재료 판매, 토지 건물 경영 등의 일을 하였다. 기다 다키조우[貴田瀧藏]는 거창읍에서 화물 영업을 하면서, 1914년 거창 읍내에 소방조(消防組)를 조직하고 이사에 취임하였으며, 1920년에는 거창면 소방조 조두(組頭)가 되었다. 1935년에는 거창군 거창 면협 의원으로 당선될 정도로 거창 지역의 유지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 거창의 일본인들은 다른 지역에 비하면 굉장히 소수였지만, 식민자로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으면서 지역 현안에 깊히 관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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