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본관 성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023
한자 居昌 本貫 姓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익현

[정의]

경상남도 거창 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개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따르면 거창현(居昌縣)의 토성(土姓)[고려 시대 이래로 과거 또는 서리직을 거친 벼슬아치 집단의 성씨]으로 유(劉)·정(丁)·장(章)·신(愼)·주(朱)씨와 내성(來姓)[토박이 성씨가 아닌, 다른 고장에서 들어온 성씨]으로 최(崔)씨가 기록되어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여지도서(輿地圖書)』에도 토성으로 유(劉)·신(愼)·장(章)·정(丁)·주(朱)씨와 내성으로 최(崔)씨가 기록되어 있다.

토성의 전신은 신라 이래 각 읍의 지배적인 위치에 있던 씨족 집단이었고, 군현의 전신인 성(城)·촌(村)이 뒷날 군현으로 개편될 때 그곳을 지배하던 성주(城主)·촌주(村主)들이었다. 이들은 그 지방에서 대대로 살면서 그곳 지명을 본관으로 하는 지배적인 성씨 집단을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성씨를 가진 사람들은 대개 그 지역에 오랫동안 뿌리박은 토착 세력들로서 점차 중앙 귀족으로 성장하거나[거창 신씨], 향리 계급[거창 장씨]으로 재편성되었다. 그리고 다른 지방에서 이주해 온 성씨로써 고려 초기 이래로 토성과 함께 기록되었던 성씨 집단이다.

망성(亡姓)이란 예전에는 토성이었지만 자연적으로 족세(族勢)가 약해져서 후손이 단절되거나 급격한 정치적·사회적 변동으로 인해 신분이 격하되는 경우, 그리고 타 지역으로 이주하는 등의 사유로 지역에서 사라진 성씨를 말한다. 망래성(亡來姓)은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내성이 그 후 다시 거주지를 옮기거나 소멸하는 성씨를 말한다. 그들은 본래 토착적 기반이 약해 쉽게 안착하기가 어려웠고, 흉년이나 전란 등으로 인해 다시 타지로 떠도는 경향이 강한 성씨였다.

현재 거창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유·신·장씨가 있다. 정·주씨는 망성이 되었고, 최씨는 망래성이 되었다.

[거창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거창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유·신·장·정·주씨가 있는데, 현재 정씨와 주씨에 관한 기록은 없다. 거창 유씨(居昌劉氏), 거창 신씨(居昌愼氏), 거창 장씨(居昌章氏) 문중만이 세계를 이어 가고 있다.

1. 거창 유씨

유전(劉筌)의 큰아들 유견규가 거창군(居昌君)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거창으로 하여 거창 유씨의 시조가 되었다.

2. 거창 신씨

신수(愼修)의 8세손 신성(愼成)이 1260년 개경에서 남하하여 거창에 터를 잡았다. 이후 15세까지 7대에 걸쳐 200여 년 이상 살아오면서 거창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3. 거창 장씨

장종행(章宗行)의 아들 장두민(章斗民)이 공민왕 때 상장군으로 홍건적을 무찌른 공을 세워 아림군(娥林君)[아림은 거창의 옛 지명]에 봉해지면서 경상남도 거창군 일대를 식읍으로 하사받아 후손들이 정착하면서 본관을 거창으로 삼았다.

4. 거창 주씨(居昌朱氏)

주씨(朱氏)는 107본(本)이 전하고 있으나 모두 신안 주씨(新安朱氏)에서 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창의 토성이었던 주씨도 이러한 분파 중의 하나로 생각되며, 지금은 망성이 되었다.

5. 거창 정씨(居昌丁氏)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에 토성 정씨 한 가구가 살았으나 타지로 전출하여 망성이 되었다.

[현황]

2000년 현재 거창 신씨는 다섯 곳에 집성촌[거창읍 대동리양평리, 위천면 황산리, 웅양면 노현리, 신원면 양지리]을 이루고 있고, 942가구 2,413명이 거창군에 거주하고 있다. 거창 유씨는 세 곳에 집성촌[거창읍 정장리, 위천면 남산리, 남하면 지산리]을 이루고 있으며, 274가구 692명이 거창군에 거주하고 있다. 거창 장씨는 세 곳에 집성촌[거창읍 상림리, 정장리, 장팔리]을 이루고 있으며, 179가구 507명이 거창군에 거주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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