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시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005
한자 新石器 時代
영어공식명칭 Neolithic Ag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선사/석기
집필자 송영진

[정의]

경상남도 거창 지역에서 토기와 간석기가 사용되던 시대.

[개설]

거창의 신석기시대는 거창 지역에서 토기와 간석기를 처음 사용한 시대를 말한다. 한반도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신석기 유적은 제주도에서 기원전 1만 년 전 것으로 생각되는 유적이 확인되지만, 한반도 전체에는 대략 기원전 6000년 무렵부터 시작되어 기원전 2000 전후까지의 시기에 해당한다. 거창 지역의 신석기 문화는 대개 신석기시대 중기~말기에 해당되며, 해안 지역보다 늦게 사람들이 진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거창 지역의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뒤쪽으로는 높은 산지가 위치하고, 앞쪽으로는 황강이 흐르는 모래땅 위에 터전을 이루고 살았으며, 수렵과 어로, 채집, 농경 등의 다양한 생산 활동을 통해 식량을 획득하며 살아 갔다. 집은 땅을 파서 지은 작은 움집에서 살았으며, 바닥이 둥근 형태의 토기와 뗀석기, 간석기 등의 도구를 사용하였다. 아직 마을 전체의 규모를 알 수 있는 자료는 없지만, 거창 임불리 선사 유적을 통해 볼 때 여러 동의 집들이 모인 소규모 마을을 형성하며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마을들은 황강을 따라 서로 인근 거리에 위치하면서 곳곳에 형성되었고, 일부는 내륙 깊숙한 높은 지대까지도 진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유적]

거창 지역의 신석기시대 유적은 거창 대야리 집자리 유적, 거창 임불리 선사 유적, 거창 신원 예동 유적 등이 있다. 거창 대야리 집자리 유적황강 하천변 충적 대지에 있는 유적으로 신석기시대 저장공이 확인되었으며, 청동기 시대 집자리에서 신석기시대 토기편이 다수 출토되었다. 유물은 모두 조각만 남아 있으며, 그릇 형태는 깊은 바리형, 단지형이 중심을 이룬다. 토기 문양은 집선문, 점열문, 사격자문, 조익형문이 나타나고 있다.

거창 임불리 선사 유적은 부산 여자 대학교 박물관[현 신라 대학교 박물관]이 시행한 거창 임불리 천덕사지 발굴 과정에서 절터 아래층에서 확인한 유적이다. 신석기시대 집자리 4동, 구덩이[수혈] 6기를 확인하였다. 집자리는 2~4m 크기의 장타원형, 말갈방형을 이루고 있으며, 크기가 작은 것이 특징이다. 토기는 모두 조각들이며, 원저형의 토기 바닥이 확인되었다. 토기의 문양은 침선, 점열, 압인, 압날법 등으로 새겨졌으며, 다양한 문양이 나타나고 있다. 보고자는 유구의 중복 관계, 토기 문양 등을 통해 크게 4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1단계는 주로 사격자문과 능형 집선문이 확인되는 2호, 4호 집자리와 4호 구덩이[수혈]가 해당된다. 2단계는 사격자문과 능형 집선문, 장사선문, 횡점열문, 능형 집선문 등 다양한 문양이 확인되며, 1호 집자리와 1호, 2호, 3호 구덩이[수혈]가 해당한다. 3단계는 사격자문, 장사선문, 단사선문, 횡점열문 등이 확인되는 3호 집자리가 해당하며, 4단계는 사격자문, 능형 집선문, 단사선문 등이 확인되는 5호, 6호 구덩이[수혈]가 해당한다.

거창 신원 예동 유적은 집석 2기, 야외노지 4기, 구덩이[수혈] 5기가 확인되었다. 토기는 무문양의 구연부편과 환저의 저부만 출토되어 내륙 고지대에서의 신석기시대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연대와 특징]

거창 대야리 집자리 유적에서는 자돌문, 침선문, 퇴화 침선문 등이 확인되며, 봉계리식 토기가 다수 출토되었다. 시기로는 신석기시대 중기~말기에 해당한다. 거창 임불리 선사 유적에서는 역시 구연부 끝에서 일정한 공백을 띄우고 시문된 봉계식 토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구체적인 시기는 신석기시대 말기로 편년된다. 거창 신원 예동 유적은 정확한 시기를 규정하기 어렵지만, 인근에서 확인되는 신석기 문화와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거창 지역의 신석기시대 유적은 바다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내륙 지역까지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진출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하류에 인근해 있는 봉계리 유적과 관련성을 고려할 때 황강을 따라 많은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거창 신원 예동 유적을 통해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큰 강가뿐만 아니라 내륙 깊숙한 고지대까지 진출하고 있었던 사실이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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