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와 의장의 무고사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529
한자 子和- 義章- 誣告 事件
영어공식명칭 False Accusation of Jawha and Uijang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배상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161년(의종 15)연표보기 - 자화와 의장의 무고 사건이 발생
종결 시기/일시 1390년(공양왕 2)연표보기 - 자화의 의장의 무고 사건으로 부곡이 된 감음 부곡이 다시 안음현으로 회복됨
발생|시작 장소 감음현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일원
성격 향권 주도권을 둘러싼 지방과 중앙이 연계된 사건

[정의]

고려 전기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에 해당하는 거창현에 속하였던 감음현에서 자화의장이 일으킨 무고 사건.

[개설]

고려 전기 자화(子和)의장(義章) 등이 정서(鄭叙)의 처 임씨(任氏)가 현리 인양(仁梁)과 더불어 국왕과 대신을 저주한다고 하여 왕이 임문분(林文賁)을 시켜 조사하게 하였다. 자화 등이 인양을 모함한 것이 밝혀져 무고한 자들은 벌을 받았으며 고려 전기 거창현에 속하였던 감음현(感陰縣)은 부곡제(部曲制) 지역으로 강등되었다.

[역사적 배경]

당시는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 등으로 고려 귀족 사회가 크게 동요하고 왕실의 존엄이 위협받고 있던 시기였다. 「정과정곡(鄭瓜亭曲)」이라는 가요로도 유명한 정서는 당대의 뛰어난 문인이었으며 인종공예 태후(恭睿太后)의 여동생 남편으로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정서의 벼슬이 내시 낭중(內侍郎中)에 이르렀던 1151년(의종 5)에 폐신 정함(鄭諴)·김존중(金存中) 등의 참소로 인하여 정서는 동래 및 거제 등지로 유배를 당하였다. 사건은 바로 정서의 처 임씨가 친정인 감음현에 머물고 있던 시기에 일어났다.

[경과]

1161년(의종 15) 감음현 사람 자화의장 등이 정서의 처 임씨가 현의 관리인 인양과 더불어 국왕과 대신을 저주한다고 하였다. 이에 왕이 합문지후(閤門祗侯) 임문분을 시켜 조사하게 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게 하였다.

[결과]

임문분의 조사 보고에 따라 자화의장의 고변은 그들과 사이가 나빠진 향리 인양을 축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거짓으로 꾸며낸 사실로 밝혀지게 되었다. 이에 사건을 일으킨 자화의장은 강물에 던짐을 당하는 처벌을 받게 되었고, 감음현은 감음 부곡으로 강등되었다. 감음 부곡이 다시 안음현으로 회복된 것은 그로부터 230년이 지난 1390년(공양왕 2)이었다.

[의의와 평가]

자화의장은 당시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던 감음현의 향촌 자치 활동에서 주도권 장악을 위한 목적으로 정서의 처 임씨를 무고하였다. 이는 중앙의 권력으로부터 밀려나 유배를 당하고 있던 정서의 아내까지 끌어들인 거창 지역 세력가들이 벌인 일종의 향전(鄕戰)이었다. 이 싸움으로 감음현이 부곡제 지역으로 강등되면서 상당 기간 지역 주민들은 크게 불이익을 받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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