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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리 말뚝바위와 구석다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1032
한자 大也里-
영어공식명칭 Daeya-ri Stake Rock and Corner Bridg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4년 8월 2일 - 「대야리 말뚝바위와 구석다리」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7년 - 「대야리 말뚝바위와 구석다리」, 『거창군사』에 수록
관련 지명 대야 마을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대야리 지도보기
채록지 대야 마을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대야리
성격 전설
주요 등장 인물 대바지 마을 사람들
모티프 유형 스님의 예언|명당의 탈취|지명 유래담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대야리의 대야 마을에 있는 바위와 다리에 얽힌 이야기.

[개설]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대야리의 자연 마을인 대바지[대야 마을] 남서쪽 400m 지점에 우뚝 솟은 바위를 ‘말뚝바위’라 하는데, 이 바위는 대바지에서 남상면 전척리로 건너가려 할 때 황강의 수심을 알려 주는 역할을 해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한다. 비가 많이 와서 물이 이 바위를 넘쳐흐르면 내를 건너서는 안 되었고, 바위가 보이면 안심하고 강을 건넜다고 한다. 말뚝바위 위쪽에 있던 다리를 한쪽 모퉁이, 즉 구석에 있다고 해서 ‘구석다리’라고 하는데, 남상면 전척리 황강 쪽으로 흐르는 개울에 있었다. 구석다리에는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채록/수집 상황]

1984년 8월 2일 거창군 남하면 대야리의 자연 마을인 대야 마을에 사는 정연학[남]으로부터 채록한 것이 거창군사 편찬 위원회가 편찬한 『거창군사』(거창군, 1997)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옛날 대야리 부근에서는 문화 유씨가 세도를 부리며 살았는데, 문화 유씨는 자기들의 세도를 믿고 마을 사람들에 대한 횡포와 착취가 심하였다. 자연히 문화 유씨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불만과 원성도 높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한 승려가 마을을 지나다가 문화 유씨의 횡포와 주민들의 원성을 듣고는 잠시 동안 이곳의 지형을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개울에 있는 다리 때문에 여울이 생겨났고, 유씨의 옥관자가 개울로 떠내려가다 다리에 걸려서 유씨들의 세도가 강해졌다고 말하였다. 즉, 옥관자가 다리에 걸리지 않고 그대로 개울을 나서서 황강으로 떠내려갔으면 유씨의 세도가 강해지지 않았을 것인데, 옥관자가 다리에 걸려 있기 때문에 유씨의 세도가 계속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다리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 유씨의 세도가 쇠락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승려는 이 말을 마치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승려의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이판사판이라 생각하고는 다리를 위쪽 전척리 앞으로 옮겼더니, 과연 그때부터 유씨 문중은 차츰 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리 이름을 ‘구석 다리’라고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문화 유씨의 세도가 한창 대단했을 때 구석(九錫)[공로가 있는 신하에게 임금이 내리는 아홉 가지 은전]을 받은 가문과 다름없이 위세가 대단했다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모티프 분석]

「대야리 말뚝바위와 구석다리」 전설의 주요 모티프는 승려의 예언, 명당의 탈취, 그리고 지명 유래담이다. 승려의 예언으로 다리를 옮겨 유씨 집안을 망하게 하여 마을 사람들이 횡포를 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석다리’라는 이름이 생긴 유래에 대하여 한쪽 구석에 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구석(九錫)을 받은 듯한 가문의 위세 때문이라고도 전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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