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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935
한자 金應哲
영어공식명칭 kimeongcheol
이칭/별칭 김응철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태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효자
성별
본관 선산(善山)

[정의]

조선 후기 거창 출신의 효자.

[가계]

김응철(金應哲)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진사(進士) 김숙(金塾)의 아들이다. 선산 김씨 정조공파는 선산에서 터를 잡고 살다가 조선 세종 때 17세 김제남(金弟南)이 거창 현감으로 부임해 거창으로 이거하면서 거창 모곡, 의동, 사동, 학동을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활동 사항]

김응철거창군 거창읍 사변리 사동 출신이다. 집이 가난하여 넉넉하게 배우지는 못했으나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 부모를 봉양하였다. 김응철은 장날마다 떡과 엿을 사 부모에게 드렸고, 총을 구해 사냥해서 고기를 대접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간호하며 집에 단을 쌓고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대신 앓기를 빌었더니 아버지의 병이 나았다고 한다. 유림에서 효자의 정려를 내려 주기를 여러 차례 진정하였으나 혼란한 정국 탓으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무덤 앞에는 면우당 곽종석(郭鍾錫)이 지은 ‘효자 김공지묘(孝子金公之墓)’라는 묘표와 묘갈이 있다.

[상훈과 추모]

유림에서 여러 차례 조정에 김응철의 정려를 청하였으나 정려는 없었다. 단지 면우당 곽종석이 지은 ‘효자 김공지묘’라는 묘표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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