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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866
한자 金尙勳
분야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신용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9년 7월 10일연표보기 - 김상훈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41년~1943년 - 김상훈 연희 전문학교 재학
활동 시기/일시 1946년~1947년 - 김상훈 조선 문학가 동맹 활동
몰년 시기/일시 1987년 8월 31일연표보기 - 김상훈 사망
출생지 김상훈 출생지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일부리
수학|강학지 연희 전문학교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134
성격 독립운동가|시인
성별
본관 성산

[정의]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거창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월북 시인.

[개설]

일제 강점기에 거창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으로 체포되었다가 해방 후 활발한 문학 활동을 한 월북 시인이다.

[가계]

김상훈(金尙勳)[1919.7.10~1987.8.31]은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일부리에서 가난한 농민 김채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천석군의 대지주였던 큰아버지 김채환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1933년 가조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하여 중동 중학교, 연희 전문학교를 다녔다. 보수적인 양아버지에 의해 보통학교 재학 중 결혼했으나 1935년 사별하였고, 중학교 재학 중 임봉조와 재혼하였다. 월북 후 북한에서 류희정과 결혼하여 자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김상훈은 중학교 때부터 시에 대한 천재성을 드러냈다. 시인 김광섭의 지도를 받으면서 1939년 학우 구락부에 시조 「초추」를 발표하였다. 1941년 연희 전문학교에 입학하여 문학 동아리 만월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43년 12월 연희 전문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원산 철도 공장에 징용으로 끌려갔다. 1944년 늦가을 맹장염으로 귀향한 후 경기도의 장군산에 들어가 협동단 별동대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해방 후 1945년 8월 16일에 출옥하여 사회주의 문학 활동을 벌였다. 1945년 11월 『민중 조선』에 시 「맹세」, 「시위 행렬」을 발표하였다. 1946년 초 조선 학병 동맹, 조선 문학가 동맹, 공산 청년 동맹 조직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47년에는 조선 문학가 동맹에서 추진한 문화 공작대 사업에 참가하였다. 1946년 『전위 시인집』[김광현·박산운·유진오·이병철과 공동 시집], 1947년 시집 『대열』, 1948년 서사시집 『가족』을 잇달아 펴냈고, 1948년 『중국 역대 시선』, 1949년 『푸시킨 시집』을 번역하였다. 이 시기에 가장 주목받는 시인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1948년 남한에 단독 정부가 수립된 후 구속되었다가 한국 민주당 후원자였던 아버지의 노력으로 풀려났다. 1949년 국민 보도 연맹에 가입되어 전국을 다니면서 전향 강연을 하였다. 이때 강제화라는 현대 여성과 결혼하였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인민군에 끌려가 자아 비판서를 내고 인민군 종군 기자로 참전했다. 전쟁 후 1953년 북한 정권에 의해 숙청되었으나 곧 복귀하여 문학과 연구 활동을 계속하였다. 1980년대 고전 문학을 수집, 정리, 번역하여 『가요집』, 『한시집』, 『리규보 작품집』을 펴냈다. 북한에서 류희정과 결혼하여 자녀를 두었다. 1987년 8월 31일 숨졌고, 4년 후인 1991년 유고 시집 『흙』이 출판되었다.

[학문과 저술]

시 「맹세」, 「시위 행렬」, 시집 『대열』, 『가족』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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