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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710
한자 彰忠祠 事蹟碑
영어공식명칭 Memorial Stone of Changchoongsa Shrin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창동로 167-11[대동리 142-3]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조익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37년 - 창충사 사적비 비문 작성
건립 시기/일시 1897년연표보기 - 창충사 사적비 건립
현 소재지 거창 창충사 사적비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대동리 142-3 지도보기
성격 비|사적비
관련 인물 정희량(鄭希亮)
재질 화강암[비좌와 이수]|오석(烏石)[비신]
크기(높이, 너비, 두께) 145㎝[높이]|53㎝[너비]|22㎝[두께]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대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한 창충사의 건립 내력을 기록한 사적비.

[개설]

창충사 사적비(彰忠祠 事蹟碑)는 1728년(영조 4) 일어난 이인좌의 난[戊申亂] 때 반란군 토벌에 공을 세운 신석현(愼錫顯), 신극종(愼克終), 신덕현(愼德顯), 신치근(愼致謹), 신광세(愼光世) 등 다섯 충신을 기리기 위해 1897년(고종 34, 광무 원년)에 건립하였다.

[위치]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대동리 142-3에 있다. 거창군청에서 김천으로 가는 국도 쪽으로 1㎞ 정도 가면 개봉교에 이른다. 여기서 냇가를 따라 100m를 가면 창충사가 나온다. 창충사 사적비창충사의 문루인 앙진루(仰辰樓) 입구에 있다.

[형태]

창충사 사적비는 귀부, 비신, 이수로 구성되어 있다. 귀부의 재질은 화감암이다. 비신은 오석(烏石), 이수는 화강암이다.

[금석문]

비신의 상단부 사면에 ‘창충사 사적비’를 전서로 새기고, 비문은 비신 사면에 해서체로 음각하였다. 비문에는 송치규(宋穉圭)[1759~1838년]가 1837년 3월 신극종의 증손자 신치능(愼致能)의 부탁을 받고 찬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비문의 글씨는 서화가로 이름 높은 윤용구(尹用求)[1853~1939]가 쓰고, 전액은 조선 말기의 문신 조병호(趙秉鎬)[1837~1910]가 썼다.

[현황]

창충사 사적비 비문은 1837년(헌종 3)에 작성되었지만, 비를 세운 것은 60년이 지난 1897년(고종 34, 광무 원년)이다. 지금은 창충사[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77호] 경내에 있어 거창군청과 신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창충사 사적비는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 당시의 구체적 사실을 금석문으로 보여 주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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