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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525
한자 東山集
영어공식명칭 Dongsanjip
이칭/별칭 동산 문집(東山 文集),동산 선생 문집(東山 先生 文集)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구경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882년연표보기~1956년연표보기 - 『동산집』 최훈교가 저술
간행 시기/일시 1960년연표보기 - 『동산집』 신문성이 간행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7년 - 『동산집』 영인본 간행
소장처 경상 대학교 도서관 - 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 900
소장처 국립 중앙 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산60-1
소장처 영남 대학교 도서관 -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214-1
성격 문집
저자 최훈교(崔薰敎)
간행자 신문성(愼文晟)
권책 10권 5책
행자 10행 26자
규격 반곽 19.6×13.7㎝|광곽 27.5×18.0㎝
어미 상 내향 이엽 화문 어미(上內向二葉花紋魚尾)
권수제 동산문집(東山文集)
판심제 동산문집(東山文集)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출신 유학자 최훈교의 문집.

[저자]

최훈교(崔薰敎)[1882.10.18~1956.1.25]의 자는 치숭(致崇), 호는 동산(東山), 본관은 경주이다. 증조할아버지 최호(崔灝)는 통덕랑(通德郞)을 지냈다. 할아버지 강재(江齋) 최광술(崔光述)이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녹동(鹿洞)으로 이거하였다. 아버지는 최명신(崔命臣)이고, 어머니 진양 강씨(晉陽姜氏)는 강영복(姜永福)의 딸이다. 거창군 가조면 동산리(東山里)에서 태어났다.

19세(1900년)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지산리(芝山里)로 이거하였고, 그해부터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에게 수학하였다. 곽종석 사후에 문집을 간행할 때 참여하였고, 1921년 동문들과 곽종석을 추모하기 위해 다천 서당(茶川書堂)을 건립하였다. 1926년에 거창 지역의 사림 33인과 함께 이이계(二以契)를 결성하여 강학 활동을 하였다. 1929년에 고을 사람들과 함께 거창군 남하면 무릉(武陵) 마을의 낙영재(樂英齋) 건립에 참여하였다. 1935년 최훈교의 제자들이 동산 서당(東山書堂)을 지어 주어 그곳에 거처하며 후진을 양성하고 학문을 연구하였다.

부인은 밀양 박씨(密陽朴氏) 박준동(朴準東)의 딸이다. 묘소는 거창군 북상면 소정리 신기촌(新基村) 앞 평지산(平地山) 유좌(酉坐)에 있다. 저술로 10권 5책의 『동산집(東山集)』이 있다.

[편찬/간행 경위]

『동산집』최훈교의 사위 신문성(愼文晟)이 주도하여 1958년 최훈교의 제자들과 유문을 수집하고, 김황(金榥)이 유문을 정리한 뒤 1958년 서문을 지었다. 신문성이 1959년 행록을 짓고, 전봉수(全鳳遂)가 행장을 지었으며, 신문성의 요청으로 김재수(金在洙)가 묘갈명을 지었다. 1960년 이보의(李寶義)의 발문을 받아서 간행하였다. 이를 저본으로 1997년 경인 문화사에서 영인본을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동산집』은 10권 5책의 연활자본(鉛活字本)으로 된 문집으로, 책의 크기는 반곽(半郭)[글이 담긴 테두리 안쪽 면]이 19.6×13.7㎝, 광곽(匡廓)[판의 사주를 둘러싼 검은 선]이 27.5×18.0㎝이다. 사주 쌍변(四周雙邊)[지면의 네 둘레를 두 개의 선으로 돌림]이며 어미는 상 내향 이엽화문 어미(上內向二葉花紋魚尾)[위쪽의 물고기 꼬리 모양의 검은 어미가 아래쪽을 향하며, 어미 부분에 2개의 화문이 있는 형태]이다. 권수제(卷首題)[본문 앞에 나오는 제목]와 판심제(版心題)[책장의 가운데 접힌 곳인 판심에 표시된 책의 이름]는 ‘동산문집(東山文集)’이다. 각 면은 10행 26자로 되어 있고, 각 행은 경계선이 있다. 경상 대학교 도서관, 국립 중앙 도서관, 영남 대학교 도서관 등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동산집』김황의 서문을 시작으로, 권1에는 부(賦) 1수, 시 113제(題), 권2에는 시 117제가 실려 있다. 시 가운데는 낙영재에서 이이계의 활동, 도동(道洞)의 향음주례(鄕飮酒禮)[예전에, 온 고을의 유생이 모여 향약을 읽고 술을 마시며 잔치하던 일] 시행, 일원정(一源亭)·심소정(心蘇亭)·녹동(鹿洞)·가조(加祚)·지천 서당(芝泉書堂) 등지에서 거창 지역 사림들과 회담하며 지은 시들이 다수 있다.

권3에는 스승 곽종석 등에게 보내는 편지 97편이 실려 있다. 편지 가운데 「여 김 문좌 창숙(與金文佐昌淑)」은 프랑스 파리로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장문을 전달하고 돌아온 김창숙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창숙이 무사히 돌아온 것에 대한 안도와 국가를 위해 대의를 행한 김창숙에게 격려와 감사를 하는 내용이다. 「답 정 주보 면석(答鄭周甫冕錫)」은 정면석이 상복과 부제(祔祭)에 대해 질문한 것에 답하는 내용이다. 「답 김이회(答金而晦)」는 김황이 질문한 외숙모의 소상(小祥)에 관한 답변과 거창 지역 유학자인 구재(苟齋) 정재성(鄭載星)의 문집 교정과 관련된 내용이 실려 있다. 「답 족손 학래 수영 의의(答族孫鶴來壽永疑義)」는 최수영(崔壽永)이 『서경』에 대해 질문한 5조목에 대한 답변이다.

권4에는 서(序) 20편, 발(跋) 5편이 수록되어 있다. 서문 가운데 「속수 범국계안서(續修泛菊契案序)」는 1636년 정온(鄭蘊)이 다섯 고을의 18현인과 함께 거창군 가북면 용산에서 모임을 갖고 이름을 붙인 ‘범국계’의 출발 과정과 침체 상황을 서술하고, 1894년에 범국계를 다시 잇는 상황을 밝힌 글이다.

권5에는 기(記) 33편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동산재 사실기(東山齋事實記)」는 1935년에 제자들의 힘으로 지어진 동산 서당의 건립 과정을 기록한 글이다. 권6에는 잠명(箴銘) 10편, 찬송(贊頌) 3편, 설사(說辭) 6편, 혼계(昏啓) 1편, 상량문 16편, 고유문 7편, 제문 31편, 뇌사(誄詞) 1편, 찬(贊) 1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7에는 비(碑) 2편, 묘지명 4편, 묘지 1편, 묘표 18편, 묘갈명 26편이 실려 있다. 권8에는 묘갈명 45편이 실려 있다.

권9에는 행장 18편, 행록 6편, 전(傳) 4편이 실려 있고, 권10 부록에는 신문성이 지은 행록, 전봉수의 행장, 김재수의 묘갈명과 이보의의 발문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동산집』최훈교의 학문과 문학, 교육 활동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문집이다. 또한 1900년대 일제 강점기를 겪은 시대 상황과 당시 거창 지역 사림들의 구국 활동 및 후진 양성 등의 활약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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