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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농민 조합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162
한자 居昌 農民 組合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하유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6년 4월 15일 - 거창 농민 조합 사무실 압수 수색 실시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47년 7월 21일 - 경상남도 농민 조합 총연맹 제2차 대표자 대회 거창에서 개최
최초 설립지 거창 농민 조합 - 경상남도
성격 기관 단체

[정의]

1945년 12월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결성된 전국 농민 조합 총연맹 소속 지회.

[개설]

거창 농민 조합은 전국 농민 조합 총연맹 산하의 대중 조직으로 결성되어 거창 지역 농민들의 토지 문제와 신국가 건설 등에 대한 요구 사항을 대변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설립 목적]

해방 직후 토지 개혁과 소작료 3·7제 실시, 양곡 수집령 반대 등의 당면한 문제를 거창 지역 농민의 입장에서 해결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45년 12월 8일 전국 농민 조합 총연맹 결성 대회에 경상남도 거창군 대의원으로 정중호(鄭重鎬), 최석만(崔錫萬), 신우철(愼宇哲)이 참가하였다. 신우철은 1931년 5월 거창 청년 동맹에서 집행 위원으로 활동한 인물이었다. 거창 지역의 농민 조합 활동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1947년 7월 21일에 전국 농민 조합 총연맹 경상남도 농민 조합 총연맹 제2차 대표자 대회가 거창에서 열렸다. 거창 인민 위원회 대표 신학우(申學雨)가 개회사를 하고 집행 위원 다섯 명을 선출한 다음 미소 공동 위원회에 보내는 메시지와 요구 조건을 제시하였다.

거창 농민 조합은 결성 직후부터 미군정의 압박을 받았다. 미군정은 1946년 4~5월에 들어 거창 농민 조합뿐만 아니라 조선 공산당과 지역 인민 위원회를 비롯한 좌익 성향의 대중 조직들을 본격적으로 탄압하였다. 1946년 4월 15일에 미군정 경관 5~6명이 출동하여 거창 농민 조합 사무실을 수색하고 문서를 압수해 감으로써 이후 농민 조합의 활동은 위축되었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부터 농민 운동을 주도해 오던 인물들이 해방 직후 자발적으로 농민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농민 조합을 만들었다. 거창 농민 조합은 인민 위원회와 신국가 건설 운동을 지지하는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거창 지역 농민들을 대변하였다. 미군정의 탄압으로 농민 조합 운동은 침체되어 갔지만 이에 탄압에 굴복하지 않은 농민들은 활동 근거지를 산악 지대로 옮겨 유격 투쟁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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