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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087
한자 敎育 運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광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9년 - 원명 학교 개교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11년 - 원명 학교에서 거창 공립 보통학교로 개칭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13년 4월 - 사립 고북 학교 개교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13년 6월 12일 - 거창 학교 조합 인가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19년 4월 11일 - 사립 고북 학교에서 위천 공립 보통학교로 개칭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0년 4월 - 웅앙 공립 보통학교 개교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0년 9월 - 가조 공립 보통학교 개교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5년 - 거창 공립 보통학교 교사 신축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6년 5월 - 신원 공립 보통학교 개교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6년 8월 - 남상 공립 보통학교 개교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7년 - 가북 공립 보통학교 개교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8년 - 마리 공립 보통학교 개교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8년 - 남하 공립 보통학교 개교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8년 3월 - 거창 농림 보습 학교 기성 준비회 조직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9년 8월 28일 - 거창 농림 보습 학교 개교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4년 3월 31일 - 거창 공립 농업 학교 인가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군민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한 학교 설립 운동.

[일제 강점기 거창군 학교 설립 운동의 현황]

경상남도 거창군에 1909년 개교한 원명 학교는 새로운 신학문 교육을 위해 만든 학교이다. 원명 학교의 뿌리는 1907년 향교에 세워진 소학교로 거창 지역에서 최초로 근대 교육을 표방한 학교였다. 일제의 식민 통치 기관인 조선 총독부는 1910년에 조선 교육령을 발표하여 전국 각지에 산재한 초등 교육 기관를 공립 보통학교로 통일했다. 이 정책에 따라 원명 학교는 1911년 5월에 거창 공립 보통학교가 되었다.

경상남도 거창군에서는 1913년 6월 12일에는 거창 학교 조합이 인가되었다. 거창 학교 조합은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일대 지역민들로 구성되었는데, 조합원들은 조합비를 징수하여 학교를 운영했다. 1925년 거창 공립 보통학교는 현재의 거창 초등학교 자리에 학교 건물을 새롭게 지었다. 거창 공립 보통학교의 학생 수는 1927년을 기준으로 남학생 658명, 여학생 184명, 전체 14학급 842명이었다. 교사는 교장을 포함 14명이었다.

한편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가조면·남상면·신원면에도 공립 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웅앙 공립 보통학교는 1920년 4월에 설립되었다. 1927년 당시 학생 수는 남학생 207명, 여학생 23명 도합 230명에 6학급이었으며, 교사는 모두 6명이었다.

가조 공립 보통학교는 1920년 9월에 설립되었다. 1927년 당시 남학생 190명, 여학생 16명이었으며, 6학급에 교사는 5명이었다.

신원 공립 보통학교는 1926년 5월에 설립되었다. 1927년 당시 6년제가 아닌 4년제였으며, 학생 수는 남학생 120명, 여학생 20명이었다. 학급은 2학급에 담당 교사 역시 2명이었다.

남상 공립 보통학교는 1926년 8월에 설립되었는데, 1927년 당시 신원 공립 보통학교와 마찬가지로 4년제였다. 학생 수는 남학생 146명, 여학생 7명이었으며, 4학급에 교사는 4명이었다.

1927년에는 가북 공립 보통학교가, 1928년에는 마리 공립 보통학교와 남하 공립 보통학교가 각각 설립되었다. 당시 『동아 일보』 기사에 따르면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의 경우 "거창읍에서도 1리나 떨어진 산골 마을로 학령 아동의 교육이 무척 어려운 형편이라 가북면의 면장 전병제 씨와 면내 유지들의 노력으로 공립 보통학교를 설치하기 위해 기부금을 모집 중이었는데 4,000원을 적립하여 인가를 얻을 수 있었다."라고 한다.

위북 공립 보통학교 역시 거창 공립 보통학교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 설립되었다. 1913년 4월 정태균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에 설립한 사립 고북 학교가 1919년 4월 11일 위천 공립 보통학교로 전환되었다.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고제면, 월천면에도 공립 보통학교가 설립되어 1932년에는 군내 13개 면에 공립 보통학교가 하나씩 존재했다.

이외에도 무산 아동을 위한 사립 학교들도 있었고, 중등 교육 기관으로는 농업 보습 학교가 설립되었다. 무산 아동을 위한 간이 학교로는 거창 공립 보통학교에 부설된 거창 여학교, 거창 청년회에서 운영하는 보성 학원, 거창읍 교회에서 운영한 명덕 학교 등이 있다.

[일본의 식민지 교육과 거창 군민들의 적극적인 대응]

일제는 조선의 교육에서 각 학교의 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학교 설립 예치금, 학교 조합비 등의 자금을 주민으로부터 징수했다. 따라서 지역민이 경제 능력이 없으면 학교의 신설과 운영은 불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면 지역에서는 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였다. 지역민들은 학교 설립을 결정하고 학교 설립 기성회를 설립한 후 주민들에게 학교 설립 기금을 나누어 거두었고, 모자라는 자금은 후원금으로 충당하였다. 학교를 설립할 수 있는 자본금이 조성되면 경상남도와 거창군에 학교 설립을 신청하여 허가를 얻었다. 지역민들은 학교 신설과 함께 학급 증설 운동, 학년 연장 운동을 이어갔다. 1924년 웅양 공립 보통학교에서는 5학급 증설을 위한 교실을 증축하려고 5,000원의 기금을 면민들이 부담해서 거창군청에 납부했다. 거창 공립 보통학교에서도 매년 취학 희망 학생을 100명 이상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경상남도와 교섭을 해서 1933년에 1학급을 증설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창 지역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해도 상급 학교 진학에는 큰 어려움이 있었다. 거창 지역 보통학교 졸업생의 상급 학교 진학률이 낮은 것은 경제적으로 가난한 탓도 있지만, 지역에 중등 학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더욱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이에 지역민들은 중등 학교 설립 운동을 준비해 나갔다. 1928년 3월에 지역 유지들은 거창 농림 보습 학교 기성 준비회를 조직했다. 거창 농림 보습 학교는 경상남도로부터 허가를 받아 1929년 8월 28일에 개교했다. 지역민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정규 농림 학교 설립 운동에 나섰으며, 1944년 3월 31일에 조선 총독부로부터 4년제 거창 공립 농업 학교를 인가 받을 수 있었다. 지역민들이 무려 14년 동안이나 노력한 결과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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