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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084
한자 勞動 運動
영어공식명칭 Labour Movemen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선화

[정의]

일제 강점기 시기에 거창 지역과 전국에서 노동자들이 벌인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 운동.

[1920년대 거창의 노동 운동]

일제 강점기 노동 운동은 1920년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개항기 이후 노동자들은 공장 노동자이기보다는 일용직 노동자나 광산 노동자, 부두 노동자들이 다수였다. 1920년대 들어서면서 산업 노동자들이 증가하였고, 이는 노동 운동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20년에 들어 노동자들의 전국적 조직으로 노동 공제회와 노동 대회가 창설되었다. 1920년대 초반 각 지방의 지배적인 노동 조합 조직 형태는 지역 합동 노동 조합이었으며, 조선 노동 공제회 지부, 조선 노동 대회 지부는 거의 대부분 이러한 조직 형태였다. 노동 공제회·노우회·노동 친목회·노동계·노동회·노동 조합 등의 명칭을 가진 지역 합동 노조는 동일한 지역을 중심으로 직업에 관계없이 각종 노동자를 혼합하여 조직한 것이었다. 지역 합동 노조는 직업적 공통의 이해 기반이 없기 때문에 전국적 수준의 조선 노동 공제회나 조선 노동 대회의 활동 목적과 구성상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활동 목적으로 노동자의 지식 계발·품성 향상·환난 구제·직업 소개·저축 장려·위생 보급·상여 대여 등의 활동에 치중하는 상호 부조 단체에 가까웠다. 구성원은 단지 무산자라는 동일한 처지가 결합의 기초가 되어 대부분 자유 노동자·반프로·소작 농민 등이었다. 1923년부터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아 노동자 조직이 조선 노동 공제회에서 조선 노동 연맹회로 발전해 나갔다. 1924년 4월에는 182개 단체의 가맹을 얻어 ‘노동 계급의 해방, 완전한 신사회의 실현, 자본 계급과의 철저한 투쟁, 노동 계급의 복리 증진 및 경제적 향상’을 강령으로 조선 노농 총동맹이 창립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거창 지역에서도 노동 단체가 설립되었다. 1924년 9월 24일 거창 노동회가 조직되었다. 거창 소작인 상조회의 미약한 활동을 비판하면서 발전적으로 이름을 개칭한 것으로 구성원은 거의 소작농이었다. 그리고 삼진 노동 공제회가 남조선 노농 동맹에 가입하였다는 기록이 신문 기사에 있지만 삼진 노동 공제회는 마산 지역에 설립된 것으로 오타이거나 동명 단체가 있었다고 볼 수 있으나 다른 기록이 없어 확인이 어렵다.

거창 지역의 노동 조합으로 명확히 기록이 나오는 것은 1927년 4월 4일 설립된 거창 노동 조합이다. 거창 노동 조합은 전국적 노동 조합 결성 움직임 속에서 거창 지역 노동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하여 거창 유지들의 발기로 설립되었다. 창립 총회에는 250명 정도가 참석하였고 조합장은 장정주, 부조합장은 신창선, 간사는 조정수를 선출하였다. 그리고 고문으로 신창재, 신용희, 주남재, 이종호를 확정하였다. 창립 총회 이후 조직을 정비하고 지역 노동자의 권익 향상에 힘썼다. 노동자의 권익과 지위 향상, 친목 도모뿐 아니라 지역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였다. 1927년 4월 역원회에서 노동 중 부상 치료비는 고용주가 부담할 것, 부당한 노동 지시 거부, 곡물상 노동자의 잡역에 보통 임금을 지불할 것 등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내용을 결의하였다. 9월 총회를 통해 회원 중 사망할 경우 위로금과 조합 유지비에 충당하기 위해 일인당 매월 10전씩 출연할 것을 결정하여 조합원의 회비로 조합을 운영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30년에는 메이데이 집회를 개최하고자 하였으나 경찰 당국의 불허로 폐지당하기도 하였다. 가조에서도 1927년 9월 31일 50명의 조합원으로 가조 노동 조합이 창설되었다.

1927년 9월 대중 단체의 조직 체계를 정비하면서 조선 노농 총동맹은 노동자만의 단일한 대중 단체로서 조선 노동 총동맹으로 분립되었다. 거창의 노동 단체들도 조선 노농 총동맹과 조선 노동 총동맹과 연결되어 활동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 조합은 일제의 감시와 탄압으로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1930년대 거창의 노동 운동]

전시 체제기인 1930년대 이후 일제의 더욱 강력해진 감시와 탄압으로 노동 단체들은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당시 비합법적 운동으로 혁명적 노동 조합이 결성되었으나 거창에서는 그 활동이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거창에서 노동 파업으로는 1936년 6월 거창 사방 공사장에서 인부 200명의 총파업이 있었다. 이유는 임금 인하에 대한 저항으로 발생한 파업이었다. 이후 『동아일보』에서는 이 기사를 취소하였는데, 진위는 알 수 없으나 일제의 강제 노역에 대한 크고 작은 저항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거창에서의 노동 운동은 다른 지역에 비해 활발한 활동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거창이 농업 중심으로 아직 공업 지대로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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