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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083
한자 農民 運動
영어공식명칭 Peasant Movemen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선화

[정의]

일제 강점기 거창 지역과 전국에서 농민들이 생활 조건·사회적 환경 개선을 위해 조직적으로 전개한 사회 경제 운동.

[개설]

일제 강점기 농민 운동은 식민지 농업 정책에 저항하고, 민족 해방 운동을 이끌어 갔다. 전 인구의 8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일제 강점기 시기의 산업 구조 속에서 한국 농민은 일본 제국주의 대 식민지 민중이라는 식민지 사회의 모순 구조와 대결 구도 아래 민족 독립과 사회 변혁의 규정적 존재이자 주력군이었다.

일제는 1910년대 조선 토지 조사 사업,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초반에 걸친 산미 증식 계획, 1930년대 중반의 농촌 진흥 운동, 1940년대의 조선 증미 계획 등의 식민 농업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같은 농업 정책의 기조는 식민지 지주제의 형성과 그를 통한 농업 수탈의 감행이었다. 한국 농민은 일제의 식민 농업 정책에 대항하여 민족적·계급적 각성을 이루며 운동 조직을 결성하고 발전시켜 가면서 농민 운동을 전개하였다.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한 것은 3·1 운동 이후였다. 3·1 운동을 통해 민족적·계급적 각성이 이루어지고 민족 해방 운동의 이념으로 수용되기 시작한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 그리고 민족주의의 발전 등으로 농민 운동은 더욱 고조되었다.

[1920년대 거창의 농민 운동]

1920년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농민 대중이 자신의 권익과 민족적 이익을 위해 농민 운동 조직을 결성하였다. 리와 면 단위로 소작인 조합·소작 조합·농민 공제회·작인 동맹 등의 농민 단체를 결성하였고 조선 노동 공제회, 노동 대회에 소작인 조합들이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초기 소작인 조합은 지주 출신의 지도부로 인해 개량주의적 활동을 주로 하여 조합원들의 계급적·민족적 요구에 부응하기 어려웠다. 1924년 4월 노농 단체들이 역량을 집중하고 통일시키기 위해 조선 노농 총동맹을 결성하였다. 1927년에는 조선 노동 총동맹과 조선 농민 총동맹으로 분화되어 발전해 갔다.

거창 지역에서도 1920년대 초에 지역 유지들이 중심이 되어 거창 소작인 상조회가 결성되었다. 소작인 상조회에서는 지세의 지주 부담과 소작료 5할 달성을 목표로 활동하였으나 중앙 조직인 조선 소작인 상조회가 친일 지주를 중심으로 식민 농업 정책에 협조하고 소작 쟁의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창립된 단체였기에 1924년에 활동 부진을 비판하며 소작인 상조회는 거창 노동회로 개칭하였다. 그리고 사회주의 사상이 수용되면서 거창에서도 청년들을 중심으로 독서회, 농민 단체, 노동 단체를 조직하였다. 가하단도 그 가운데 하나로 거창 지역 청년 운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사회 단체였다. 특히 농민 노동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거창 지역민들의 의식 고취를 위해 노력하였다.

[1930년대 거창의 농민 운동]

1931년경 가하단을 해소하고 거창 농민 동맹을 결성하기로 하였다. 1931년 11월 3일 거창 농민 동맹 결성을 위한 준비 위원을 뽑고 맹원을 모집을 할 때 거창 경찰서에 신희종(愼熙宗) 외 7명이 검거당하기도 하였다. 이후 거창 농민 동맹의 활동상은 확인할 수 없어 일제의 탄압 속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931년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에서는 지주들이 지세를 소작인에게 부담시키는 것에 반대하여 당국의 탄압 속에서도 소작인들을 중심으로 소작 조합을 결성하였다.

이처럼 1920년대 후반부터 거창 지역의 농민 운동이 본격화하고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1929년 세계 대공황 이후 일제의 탄압이 점차 심해지고 많은 활동가들이 검거되면서 사회주의 운동가들은 기존의 지식인 중심의 운동을 비판하면서 노동자 농민을 중심으로 한 활동으로 전화하였다. 거창 지역에서도 1930년대 혁명적 농민 조합이 건설되고 지하화하였다. 혁명적 노동 조합의 하나인 낙동강 농민 조합의 조합원들이 1932년 거창 경찰서에 검거되어 함옥정 외 5명이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1년 6개월에서 1년형을 선고 받았다. 이러한 일제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농민들의 계급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독서회를 등을 만들어 조직을 확대해 나갔다. 이러한 가운데 발발한 사건이 거창 농민 독서회 사건으로 1935년 3월 전라북도 정읍 경찰서에 발각되어 7명이 검거되었다. 전주 지방 법원에서 각 3년에서 1년의 구형을 받았다. 이후에도 거창 지역에서 소작 쟁의가 끊임없이 발생하였으며, 일제 강점기 식민지 기간 동안 농민들은 지주와 일제에 대항해서 활동을 이어 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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