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11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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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洋城里洋城-洞祭 |
영어공식명칭 | Village Ritual in Yangseong-ri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양성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중휘 |
시작 시기/일시 | 조선시대 - 양성리 양성마을 동제, 마을 성립 초기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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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장소 | 동제당 -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양성리 126 |
성격 | 의례|제 |
의례 시기/일시 | 정월대보름/자정 |
신당/신체 | 동제당/신위[동신 할아버지]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양성리 양성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양성리 양성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 자정 마을 남쪽 대나무 숲의 동신(洞神) 할아버지에게 동제(洞祭)를 지낸다.
[연원 및 변천]
양성마을에서 언제부터 동제를 지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양성리 양성마을의 동제는 그 절차가 간소화되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양성리 양성마을의 동제당은 양성리 126번지 마을 남쪽에 있는 대나무 숲 옆에 있는 푸른 슬레이트 지붕의 건물이다. 과거에는 대나무 숲 안에 모셔져 있었으나 태풍으로 인해 이전하였다. 신위(神位)는 동신 할아버지이다. 1960년대의 조사에 따르면 당시에는 양성리 본동과 쪽지골에 각각 하나씩의 동제당이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의 제당은 66㎡ 규모의 기와집이었으며, 33㎡ 규모의 함석 제당이 박씨 골목의 안씨 터전이라 칭하였다.
[절차]
양성리 양성마을의 동제는 정월대보름 자정에 지낸다. 1980년대에는 마을 사람들이 선정한 제관(祭官)과 도가(都家), 종사원이 3일 전부터 목욕재계하고 금줄을 치며 동제를 지내고, 제물(祭物)을 모아 음복(飮福)하였다. 오늘날에는 마을 주민이 깨끗하다고 인정하는 남자 두 명을 제관으로 선출하여 동제를 지낸다. 제의(祭儀)는 초헌(初獻)·축(祝)·아헌(亞獻)·종헌(終獻)·소지(燒紙)를 차례로 행하는 유교식 절차를 따른다. 제물로는 술과 흰떡, 쌀밥, 소고기, 과일 등을 올린다. 과거에는 임산부와 산모는 제사를 지내기 전 마을 밖으로 내보내기도 하였다.
[현황]
양성리 양성마을은 오늘날에도 정월대보름에 동제를 지내는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다만 과거에 비해 동제의 절차나 방식 등은 다소 간소화되었다. 제관은 마을에 남자들이 없는 까닭에 이장이 일임하여 진행한다. 다만 제의 과정에서 몸을 조심하는 관습은 유지되어 전날 몸을 깨끗이 하고 제당에 금줄을 쳐두고, 제관의 집 앞에 황토를 뿌리는 등의 정성을 들인다. 제물로는 술, 밥, 고기, 과일, 어포 등을 준비한다. 다만 과거에 비해 상당히 간소화되었다. 제의는 초헌, 축, 아헌, 종헌, 소지를 차례로 행하는 유교식 절차를 유지하고 있다. 동제가 끝난 이후에는 제의에 사용한 술을 음복주라 칭하며 나눠 마신다. 제물을 썰어 안주로 먹는 것으로 동제가 마무리된다.